[소설]오래된 정원(216)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눈을 뜨고 다시 걸으면 하얀 빛들이 차츰 퇴색하는 것처럼 어두워졌다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올 때 쯤에는 담장 위의 나무며 하늘이며 하얗게 칠한 시멘트 담장까지도 그 선명하고 찬란한 색깔 때문에 어둠 속에서 천연색 슬라이드 사진이 비친 것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징벌 사동의 먹방으로 돌아가기가 끔찍해진다. 그렇지만 돌아와 어둠 가운데 첫날처럼 고립되어 등 뒤에서 철문이 요란하게 닫히고나면 그 절망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꼴이 되어 버린다. 먹방의 징벌에는 몇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적응하려고 짐승처럼 몸부림치는 열흘 쯤의 기간이 있고, 외출을 하고나서 돌아와 자신의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간이 있으며, 이 정체와 권태의 기간을 지나면 관리하는 쪽에서 수정이나 포승을 풀어주며 달래고 조건을 내세우는데 대개는 잘못을 시인하는 자술서나 반성문이다. 징벌자는 억울하기도 하고 아직은 증오심 때문에 그쪽과 합의할 마음이 없으므로 뻗대는 기간이 있고, 관리자는 다시 징벌의 상황을 처음으로 돌리거나 상담과 산책의 시간을 길게 주어 회유한다. 양쪽이 맞부딪치면 수인은 머리가 돌거나 더욱 형편이 나쁜 곳으로 이감을 뜨게 된다. 어쨌든 그는 순화되고야 만다. 장기수의 겸손한 눈빛 안에는 그러한 모든 나날들이 녹아 있다.

일반수들은 틈만 있으면 왈왈구찌가 되어 보려고 꿈틀거린다. 담당의 약점을 잡기도 하고 포악을 떨기도 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간부들을 귀찮게 만든다. 징벌방에서 제대로 길들여지지 않고 나오는 자들은 한 육개월쯤을 거듭 드나들면서 속을 썩인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먹히는 짓이 자해인데 바늘에서부터 손톱깎이나 못이나 아무튼 무엇이든 삼켜 버리기도 하고 깡통으로 만든 칼로 배를 긋기도 하고 심지어는 세상 꼴을 보기가 싫다고 바늘 실로 멀쩡한 두 눈을 꿰매어 버리기도 한다. 어떤 녀석은 말대꾸하지 말랬다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입을 꿰매기도 한다. 이러고나면 대개의 담당들은 손을 들고 적당히 편하게 풀어 준다. 그런 왈왈구찌들의 전성기는 초창기라면 어림도 없는 노릇이라 대번에 박살이나서 이감을 뜨거나 순회를 시켜 버리지만 대개 만기가 일 년 못되게 남아있을 적이면 귀찮아도 모른척 해준다. 더구나 두발허가증까지 받고나면 이제는 기고만장이다. 편해봤자 작업에서 좀 손쉬운 부서나 열외 정도에 건더기가 보다 많은 식사에 조금 인원이 적은 널찍한 방에서 자는 것이 고작이다.

징역은 먼저 소가 바뀌면 다시 시작이고 방이 바뀌어도 다시 시작이며, 아무리 평화스럽고 합리적으로 운영되어 좋은 징역이었다 할지라도 사람이 바뀌면 어제의 조건은 사라지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정치범은 바깥의 사회적 사건이나 정치적 명분 때문에 옥내 투쟁을 하기도 하지만 옥내 처우 문제를 들고 나올 때에도 자신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동료 재소자들 수형생활의 개선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밖에서는 먼지처럼 하찮고 아주 작은 일이 여기서는 목숨을 걸 일이 되어 버린다.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돼지고기의 정량이 모자란다거나 소장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든가 하는 일로 수십 일씩 굶어야 한다. 자기가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밖에 없기 때문에 그 육신을 걸고 싸운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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