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성희/'비아그라'가 심장약인가

  • 입력 1999년 8월 31일 18시 59분


정부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시판을 마침내 허용함으로써 10월부터 ‘비아그라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고심 끝에 찾아낸 궁여지책(窮餘之策)이라지만 심혈관계 질환이 없음을 입증하는 건강진단서만 제출하면 약국에서 비아그라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뭔가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한국화이자사측이 강조하는대로 비아그라는 치료제다. 그렇다면 비아그라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것은 당연히 발기부전 증세에 대한 진단서여야 한다.

그런데도 식약청은 발기부전 진단서나 처방전이 아니라 일종의 ‘심장병 건강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심장병 환자는 비아그라를 복용할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환자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발기부전 환자가 모두 심장병 환자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약국 판매를 허용하면서 비아그라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겠다는 발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떤 사람이건 심장만 튼튼하면 비아그라를 살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이런 정책은 분명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기현상을 낳을 것이다. 일례로 비아그라 때문에 외국에서는 비뇨기과가 특수(特需)를 누렸는데 한국에서는 심장 전문의들이 바빠지게 됐다.

비아그라 판매 대상을 ‘발기부전 증세가 있고 심혈관계 질환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식약청은 의약분업이 안돼 있기 때문에 다른 약품들은 그대로 두고 비아그라만 원외 처방전을 발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차제에 앞뒤도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심장병 건강 진단서 제출을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건강 보호라는 원칙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필요하다면 법은 고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정성희<사회부>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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