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96)

  • 입력 1999년 8월 16일 18시 39분


오현우씨는 수형생활을 아주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합니다. 이번 여름부터는 사동 뒷마당에 채소밭도 가꾸었습니다.

어떤 채소밭인데요?

뭐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상추 조금, 깻잎 조금, 고추도 있고….

그인 그런 일 참 좋아해요.

나는 교도관의 입이 언제 다시 닫힐지 몰라 재우쳐서 물었어요.

그런 것들은 씨앗을 뿌리나요?

상추나 배추는 씨를 구해다 주고 다른 것들은 봄에 우리가 시장에 나가서 모종을 사다 주었지요.

농사는 잘 되었대요?

그는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아주 실하게 잘 되었습디다. 어떤 재소자들은 화초도 가꿉니다. 물론 모범수의 경우이지만. 모범수가 되면 운동 시간도 늘고 출역도 나가게 되니까 건강에두 좋구요. 또 무엇보다 시간이 잘 가지요. 그리고 면회의 폭이나 횟수도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그인 운동 시간에 뭘 하지요?

달리기나 걷기를 많이 하더군요. 워낙 독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다양한 운동기구는 역시 모범수가 되면….

나는 그제서야 그가 나에게 전달하려는 낱말 중에 모범수라는 말이 초점이라는 걸 눈치챘어요.

얼마나 더 있으면 모범수가 되나요?

글쎄요, 일반수들의 경우에는 급수가 있어서 대개 형기의 삼분지 이만 징계 없이 넘기면 가능합니다. 공안수의 경우에는… 급수가 따로 없어서 역시 전향 여부가 중요한 문젭니다.

전향이요?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자신있게 다시 말했어요.

그렇습니다. 자기가 가진 사상을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힌 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거든요. 나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어요.

머릿속의 생각을 누가 참견해요? 그리고 그건 반대루 법에서 금지하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의미 아닌가요?

즉, 자유민주적인 사상을 가져야….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아닌가요?

아, 그만두시죠. 저는 이만 바빠서.

나도 그와 함께 빠른 동작으로 의자에서 마주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내 목소리가 너무 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당신을 남겨두고 돌아서야 하는데. 나는 얼떨결에 그에게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임은 가볍게 목례로 받고 손을 내밀어 문쪽을 가리켰어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접수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문으로 나와 출입증과 주민증을 바꾸고 가로수가 섰는 신작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뒤를 한번 돌아보니 드높던 하얀 담장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차츰 낮아지고 있더군요.

가까이서는 안보이던 옥사 건물들이 층을 이루어 언덕 위에 서있는게 보였어요. 올 때는 무심코 넘겨서 보이지 않았던 옥사의 작은 창들이 보였고 창 앞에 창살이 쳐진 것도 보였어요. 나는 돌아서서 마치 그 창의 어딘가에서 당신이 내다볼 것만 같아 우두커니 서있었어요.

<글:황석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