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교수님들의 시위

  • 입력 1999년 7월 12일 19시 25분


6월15일 전국 대학교수 1000여명이 부산에서 ‘4·19 이후 처음으로’ 거리시위를 벌였다. 7월8일에는 명동성당에서 똑같은 집회를 가졌다. 격동 40년 세월을 시위 한번 않고 보낸 대학교수들이 도대체 무슨 비상사태를 맞았기에 저러는 것일까.

문제는 ‘두뇌한국21’이다. 교육부가 세계수준의 대학원과 지역우수대학 육성을 위해 해마다 2000억원씩7년간모두1조4000억원의 신규예산을 투입하는 이 사업을 취소하라고, ‘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요구한다. ‘시카고 뒷골목의 마피아 사업’ ‘중국 문화혁명때의 홍위병 방식’ ‘무뇌(無腦)한국21’ 등 이 사업을 계획하는 데 참여한 교육부 공무원과 일부 교수들에 대한 비난은 하늘을 찌른다.

슬픈 일이다. 비판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아무도 더 행복해질 수 없고 누구도 더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그러나 대다수가 불만을 가진 현재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말고는 성난 교수님들의 마음을 풀어드릴 길이 없다.

한국에서는 6만여명의 교수가 400여개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종사한다. 연간 2000억원이면 교수 한 사람에게 약 300만원, 대학 하나에 5억원 정도 돌아가는 돈이다. 이렇게 쪼개어 쓰면 고등교육 발전에 도움이 될까. 전국교수연대회의 교수님들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선 생명과학과 반도체 등 몇몇 공학분야에 몰아주는 데 대해서는 기초학문을 죽인다는 원성이 드높다. 몇몇 대학에 몰아주는 건 더더욱 안된다. 소외된 대학을 죽인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때문이다. 정부와 공기업의 특별한 지원을 받는 서울대 KAIST 포항공대에 대한 지원은 지역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죽이기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킨다. 주요 국립대학 교수들은 ‘두뇌한국21’의 서울대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권역별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요구하지만 이것도 해법은 아니다. 각 권역의 소규모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들이 똑같은 논리로 권역별 연구중심대학의 특혜지원을 문제삼을 것이다.

여론수렴 부족에 대한 비판은 옳지만 무한정 타당한 건 아니다. 만약 ‘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대회의’ 대표자들이 2000억원을 집행할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전국 교수들의 여론을 수렴해 모든 대학 모든 분야의 교수들이 두말 없이 받아들일 합의안을 만들 수 있겠는가. 한정된 예산의 할당은 전형적인 제로섬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몫을 포기할 분야나 대학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 교수나 학생수를 기준으로 예산을 나눠먹는 것 말고 여론 수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합의가 과연 무엇이 있을지 모르겠다.

교수들의 반대투쟁으로 가을까지 사업시행이 늦추어지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와중에서 고등교육 발전을 위해 어렵사리 확보한 99년도 예산 2000억원은 불용 처리될 것이다. 2000년 이후 예산은 확정된 바 없으니 ‘교수연대회의’는 승리의 환호성을 올려도 된다.

교육부안은 물론 최선이 아니다. 하지만 사업의 백지화는 국가적으로 볼 때 차선 또는 차악마저 배제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이 승리를 원하는 분들은 이렇게 자문해 보셔야 할 것이다.

“내가 속한 학문분야, 내가 몸담은 대학이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주로 대학원생을 양성하는 데 쓸 1조4000억원의 인력양성비는 없어지는 편이 더 좋은가?”

유시민(시사평론가)smrhyu@ms.kr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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