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DJ, 新中道로 가나

  • 입력 1999년 7월 6일 19시 50분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우선 개혁정책 기조가 시장경제원리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쪽에서 국민복지 향상과 공평분배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재벌개혁과 분배구조개선에 역점을 두면서 노동계와 서민층을 적극 끌어안는 모습이다.

노동계의 요구사항을 전격 수용한 ‘6·25 노정(勞政)합의’나 ‘6·28 공평과세 선언’ 등이 중산층과 서민층의 박탈감을 달래주는 정책이라면 재벌개혁에 대한 단호한 태도, 한진그룹 등에 대한 전면적인 세무조사, 재벌총수의 사재(私財)출연을 전제로 한 삼성차 처리, 상속 증여세 과세강화 방침 등은 기업지배 소유구조개선과 분배의 공평을 겨냥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두고 ‘DJ노믹스’가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신중도(新中道)노선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대(對)국민 사과 후 “정부는 앞으로 생산적 복지국가를 지향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물론 김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직접 표명한 적은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운영의 기본철학으로 내세웠을 뿐이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정에서 DJ의 경제정책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하는 정책패키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적극적인 수용으로 귀결되었다.

그 결과 경제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이 절대가치로 등장했고, 경제적 효율성이 개혁의 유일한 잣대가 되었다. 개혁정책을 이끄는 관료들은 왜 개혁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빅딜과 민영화, 규제완화와 같은 개혁프로그램 목표를 설정해 놓고 조기 가시화에 매달리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교조화(敎條化)다. 이렇게되면 개혁주체들은 개혁의 본래 목표에는 눈을 감은 채 수단적 가치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그같은 정책시행은 으레 실패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바로 그런 꼴이 되지 않았나 걱정이다. 기업 금융 노사 공공부문의 본격적인 구조개혁은 바야흐로 지금부터인데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현상과 중산층의 붕괴, 불평등의 심화같은 폐해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사회적 형평성과 연대성도 위협받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현정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와 서민층의 이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노선에 충실했던 영국의 경우도 소득불평등이 날로 심화되고 ‘20대 80’의 사회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외곬으로 밀고나갈 때 자칫 걸려들게 되는 ‘세계화의 덫’이다.

급기야 토니 블레어총리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제3의 길은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실용적으로 결합하는 중도좌파적 노선을 택하고, 경제적으로는 무한경쟁으로 인한 시장경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간여하는 한정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복지와 사회적 동반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김대통령이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탈피해 ‘한국식 제3의 길’을 택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생산적 복지정책을 강조했다고 해서 신중도 노선으로의 선회를 뜻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는 제3의 길에서 사용하는 핵심개념이다. 현정부 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두뇌집단도 “신중도로 개혁노선을 바꾸어 국민적 지지를 다지고 이를 지렛대로 근본적인 정국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건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이 큰 만큼 새로운 생산적 복지정책과의 접목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내년 총선도 의식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정책기조의 전환은 혼란스럽다.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은 아직 그 유효성에 대한 검증이 안되고 있으며 정체성도 불투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자(外資)의 논리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노선도 아니고 국민경제를 새로운 정책의 실험대상으로 삼는 신중도노선도 아니다. 각 경제주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고통분담을 이끌어내면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비전과 전략의 제시다.

김용정<논설위원>yjeong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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