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사일사거리 자위권 문제다

  • 입력 1999년 7월 5일 18시 21분


미국은 한국 미사일의 사거리를 500㎞까지 늘려야겠다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의사표명에 부정적 입장이라고 한다. 미사일의 세계적 확산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핵과 함께 미사일 화생방탄 등 대량살상 무기의 확산방지는 한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앞장서 지지해 왔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일반적인 세계안보 문제와 다르게 북한의 도발의지를 억지(抑止)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고도 남는 북한 미사일에 비해 우리의 미사일 대응력은 상대가 안된다.

군사적 억지력이란 상대방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때 그것을 응징하는 데 충분한 2차공격 능력을 뜻한다.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예상되는 보복공격이 치명적이 될 것임을 알아야 군사도발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는 180㎞로 휴전선에서 평양까지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해와도 우리는 그에 대한 응징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미사일 능력이 북한에 뒤떨어진 것은 북한만큼 과학기술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국방예산이 없어서도 아니다.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려면 미국의 양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79년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당시 정부가 그렇게 하겠다고 선택한 약속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미사일확산 방지장치인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허용하는 300㎞ 사거리도 우리는 최근에 와서야 겨우 확보할 단계에 이르렀다. 그동안 북한이 미사일개발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그에 대응한 사거리연장을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국가간 약속을 지켜 미국측과 협의해 왔다. 이것만으로도 이제 20년간 묶여 온 한국의 ‘미사일주권’은 되찾을 만한 신뢰를 충분히 쌓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가 500㎞가 되면 중국과 일본의 영토 일부까지 사정권에 들기 때문에 두 나라의 반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이미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에 든지 오래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미사일개발에 견제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북한의 미사일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자위권 차원에서 한국이 사거리 연장을 하려는 것만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균형있는 자세가 아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도 우려할 것은 미사일 사거리연장 자체가 아니라 그 나라의 대외 신뢰도임을 잘 알 것이다.

북한이 남북대화는 외면하면서 미국만 상대하려는 큰 이유중 하나는 한국이 미사일 개발과 같은 군사주권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오판을 예방하고 최소한의 자위권확보를 위해서도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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