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번엔 「원철희 리스트」

  • 입력 1999년 6월 11일 19시 37분


이 나라 검찰주변에는 리스트도 많다. 이번엔 또 ‘원철희(元喆喜) 리스트’설이 나돌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원씨는 농협 중앙회장으로 있던 95년부터 금년 2월까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등에게 억대의 로비자금을 썼으며, 그중 일부 정치인은 후원금 명목 등 정기적으로 제공된 액수를 합쳐 수천만원씩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이야 어떻든 무슨 무슨 리스트설이 자꾸 나도는 것은 기본적으로 검찰에 책임이 있다. 검찰은 철저한 조사로 리스트의 진상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검찰은 원씨가 수사과정에서는 로비에 대한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았다며 꼬리를 빼는 모양이다. 그러나 원씨는 9일 첫공판에서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검찰신문에 “조직에 도움이 되는 공공목적에 사용했다”고 말해 로비자금으로 썼음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검찰이 로비대상자들을 조사해 항간의 의혹을 풀어야 한다. 리스트설이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 검찰수사에 투명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검찰이 사법처리 대상자와 조사범위를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별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검찰의 공소내용대로 원씨가 농협공금으로 비자금 6억원을 조성해 썼다면 그 돈을 받은 상대방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강원지사 선거에 출마한 한호선(韓灝鮮)전농협회장에게 선거지원비로 1천만원을 제공한 혐의만을 밝혔을 뿐이다. 원씨 주변으로부터 ‘정치적 희생양’이란 소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원씨를 구속했으면서 받은 사람은 불문에 부친다면 공정성을 잃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리스트에는 여당의 중진의원 현직 장관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인사들이 정말 수천만원씩의 돈을 받았다면 당연히 문제이고, 만약 받지 않았다면 개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명백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원씨는 또 법정에서 96년 당시 윤진식(尹鎭植) 청와대경제비서관과 재정경제원 관계자의 부탁으로 부실기업이던 서주산업에 지급보증을 해준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은 여기에 대해서도 문제삼지 않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관치금융의 전형적 사례가 드러났는데도 그대로 넘어간다면 안될 말이다. 윤씨 등의 직권남용 여부 등을 반드시 가려야 할 것이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를 정치적 고려에 의해 용서한다면 검찰에 대한 신뢰회복은 요원할 뿐이다. 이번 리스트에 앞서 신동아그룹사건과 관련해 ‘최순영(崔淳永) 리스트’설이 나온 것도 본질적으로 검찰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검찰에 더 이상의 리스트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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