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큰 정치인」을 위하여

  • 입력 1999년 6월 8일 20시 06분


사랑이 미움되기 잠깐이다. 이게 어디 남녀 사이만의 문제던가. 민심도 그와 같다. 민심이란 종종 변덕스럽고 야박하고 모순적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자신은 말고 남만 탓하려는 천박한 이기(利己)의 모습도 들어 있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위악(僞惡)스러운 군중심리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내(川)가 모여 강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듯이 민심의 강에는 일정한 지향점이 있다. 그 지향점이 곧 여론이고 민의(民意)이다.

도그마에 빠진 권력사랑이 미움되듯 잠깐 새 변하는게 민심이라면 권력의 속성은 늘 오만과 독선을 부추긴다. 특히 위기 극복이나 눈앞의 성취에 도취될 때는 쉽사리 도그마(독단)에 빠져든다. 도그마에 빠진 권력은 민심의 강을 보려 하지 않는다. 보더라도 따르기보다는 물줄기를 돌려놓으려 한다. 이럴 경우 민심과 권력간에 갈등이 증폭되며 길어지면 사회적 위기로 심화된다. 권력의 벽이 높아질수록 민(民)은 대체로 두 가지의 반응양태를 보인다고 한다. 그 하나는 눈을 내부로 돌리는 것, 이를테면 나와 내 가족의 소시민적 안락에 매달리는 것이다. 저항시인이기도 했던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전반적 개혁에 대한 희망이나 일반적 가치에 대한 관심, 또는 외부로의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는 정도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들의 에너지는 저항이 가장 적은 방향, 즉 내부로 향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근심을 덜어주는 술잔’에 기대어 세상에 대해 냉소하거나 될 대로 돼라는 식의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이 둘이 쌓이면 그 사회는 병든 사회가 되고, 내연(內燃)하던 위기는 한순간 폭발한다.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면면이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반세기만인 여야 정권교체의 의미에는 마땅히 이런 반복된 비극과의 단절이 포함될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은 그 단절의 선언적 방향 제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국민의 정부’에 우려할 만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옷로비’의혹사건은 그 위기 징후의 함축적 단면이다.

김대통령은 러시아 몽골 순방에서 돌아오던 날 일흔넷 고령의 대통령이 외국땅에서 국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터에 국내 언론이 그것은 외면하고 ‘옷로비’의혹을 연일 대서특필한 것에 대해 섭섭한 심경을 토로했다. 솔직한 심경 토로요, 실제 사안의 중요성에만 비춘다면 ‘정상외교의 성과’에 몇몇 고위층 ‘사모님들의 정신나간 행태’를 견줄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런 섭섭함과 노여움이 김대통령으로 하여금 ‘옷로비’의혹의 본질을 외면하고 여론을 등지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작용했다면? 행여 그렇다면 이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노릇이다. 민심은 논리이전의 정서이다. 그 정서를 바탕으로 논리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른 리더십이다. 아무리 나름의 논리를 내세운다고 해도 그것이 국민의 일반적 정서와 함께하지 못할 때에는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만델라와 일곱 손자올해 여든한살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대통령이 1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맞서다 27년간 옥고를 치른 만델라는 90년 2월 석방된 직후 행한 연설에서 “제가 여기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은 예언자로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하잘것없는 종으로서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재임기간 중 진정한 화해와 용서로 흑백통합의 기틀을 마련하는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만델라대통령은 “은퇴 후 일곱 손자들과 고향의 계곡과 언덕, 시냇가를 거닐며 여생을 보내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겠는가.

우리도 이제 넬슨 만델라 같은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 아직 많은 사람들은 그 첫인물이 김대중대통령이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소리는 ‘국민의 정부에 국민은 없다’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김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오늘의 위기를 직시하고 정권재창출에 연연하지 않는 ‘큰 정치인’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것은 오랜 세월 희생을 무릅쓰고 그를 지지해온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무이기도 하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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