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송상현/「떡값 판검사」문제삼는 국제환경

  • 입력 1999년 3월 11일 19시 25분


세계 국가들이 무역자유화와 공정한 국제거래환경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통해 전체적인 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윈윈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세계무역기구(WTO)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나타났다.

▼ 법조계 윤리성 도마에 ▼

이같은 협정에는 내국민대우조항과 최혜국대우조항이 들어 있다. 관세나 기타 각종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상대국 상품에 대한 규제와 차별을 없애 동일 또는 동종의 국내 생산품과 똑같이 취급하자는 취지의 규정이다. 또한 한 나라가 상대국의 생산품에 어떤 특혜를 줄 때는 그러한 특혜를 다른 협정국의 같은 상품에도 부여해야만 한다.

이같은 규정은 국내법에도 있다. 예컨대 ‘외국인 투자 및 외자 도입에 관한 법률’에도 평등대우에 관한 조항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와 그들의 국내영업에 대해 한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해 내외국 인간의 차별을 없애겠으니 마음놓고 많은 투자를 해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내외국인간 차별 철폐는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를 위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조건이 돼버렸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한 국제거래환경의 확보를 위해 남의 나라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면 처벌하는 부패방지협약이 성립됐다. 한국도 이를 비준한 바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간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평등대우조항을 근거로 삼아 점차 협정국가의 법제도의 합리성과 법원의 건전성까지 문제삼는 논의가 시도되고 있음은 놀랄 만한 일이다.

미국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비합리적이라고 할 정도로 피해자에게 무조건 동정적이다. 더욱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합해 엄청난 고액배상을 선고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잘못한 자에게 그가 발생시킨 실제 손해 외에 징벌적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따로 더 부과할 수 있는 미국 특유의 배상제도이다.

한국에서는 배심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고 법관이 실제 손해액의 범위 내에서 재량껏 선고한다. 이처럼 재량권의 범위가 큰 법관이 당사자나 대리인으로부터 떡값을 받는 불건전한 관행은 내외국민간 차별 철폐 내지 평등대우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자국 법원보다 엄청난 손해배상을 선고한 미국법원의 판결에 화가 난 어느 외국회사가 미국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같이 엄청난 손해배상액을 선고한 것은 내외국민 차별금지조항에 어긋나는 불공평한 것이므로 미국 정부가 손해배상을 하라는 취지의 청구였다.

▼ 잘못된 관행 개혁절실 ▼

오늘날은 미국이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화를 앞세워 무역 통상 금융 투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침없이 세계를 휘젓는 그야말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이다.

미국은 심지어 법률분야까지도 스스럼없이 자기네 제도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미국이 무절제한 배심제도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기 또는 수정하기보다는 다른 국가들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이 많다.

일본이 배심원제도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고 대만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 로스쿨 제도 도입을 논의중인 것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보아야 한다. 논의의 초점이 흐려질 우려가 있어 로스쿨 제도 도입문제는 여기서 접어두겠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전관예우나 떡값관행 등 한국법원 검찰 기타 법집행 공무원의 윤리성을 문제삼아 다른 협정국가의 건전한 법원과 비교하면서 내국민대우나 평등대우조항 위반이라고 들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외국인 투자자의 상대방인 한국인 당사자의 변호사가 떡값 등을 법관 검사 또는 행정부 관리에게 주는 것은 부패방지협약 위반이 아니라 관행이라고 국제사회에 외칠 수가 있을까.

법원이나 검찰 그리고 변호사가 국내외에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건전하게 기능하도록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국외에서 볼 때 더욱 절실하다.

송상현<서울대교수·뉴욕법대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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