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61)

  • 입력 1999년 3월 11일 19시 02분


스님은 이 절에 자기가 오게 된 게 다 전생의 업보라구 하더군. 호국사에는 언제나 세 사람 뿐이었어. 만각 스님하구 주인 보살댁하구 팔십이 다 된 공양주 할머니 그렇게 말이야. 할머니는 허리가 굽었는데 건강과 총기가 어찌나 좋은지 나무두 한 짐씩 해오구 절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거야. 날마다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스님 깨워 드리고 예불하고는 아침 밥을 짓는 거야. 스님이 절집의 사연을 말했어.

내가 전에는 영광 불갑사에 있었소. 전부터 여기 기시던 스님을 잘 알고 있었는디 돌아가신 뒤에 보살님이 나를 찾아 오셨습디다. 주인 스님도 안기시고 아무래도 신도들이 스님을 찾으니 자기네 절에 와서 불사를 보아 달라고 말이여. 그려서 이 절로 오게 되았는디 내가 그 전에 알기로는 여기가 극락암이었나 그러요. 보살댁 말로는 군청에서 전몰자 신위를 안치하면서 이름을 호국사로 바꾸었다고 그래. 내가 오던 첫 날 저 손님채에서 자는데 새벽 두어 시쯤 되었을 거여. 어렴풋하게 방문이 열리는 것 같단 말이여. 내가 잠결에 바라보니 사내가 하나 서서 방안을 기웃이 들여다 보더만. 나는 갑자기 가슴이 철렁하데. 게 누구요? 했지. 그랬더니 그 자가 이러는 게여. 스님 밥 좀 주쇼. 내가 이랬지. 아, 밥을 달래문 부엌으로 가야지 여긴 왜 와서 그래. 깜박, 하고는 사내가 없어졌소. 나는 그제사 잠이 완전히 깼지. 허허 참 선명하다. 꼭 생시인 듯하단 말여. 그 사내가 배추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공비토벌을 초창기부터 제대할 때까지 했으니 척 보면 알아. 그 자는 산 사람이여. 그때는 젊은이들이 머리 아래를 치깎았는데 그게 산에서 자라고나면 윗머리가 배추처럼 늘어져서 아래를 덮게 되거든. 기분이 스산해서 일어나 절 마당을 돌며 목탁을 치고 염불을 했지. 헌데 이튿날 잠을 자는데 또 새벽녘에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배추머리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와. 들어와서는 내 위에 올라타고 목을 조르면서, 밥 내놔 밥 내놔! 하면서 흔든단 말여. 으악, 하고는 온 힘을 다해서 뿌리치고 일어났더니 그놈은 간데없고 전신이 땀이여. 도무지 만정이 떨어져서 이 절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날은 염불도 않고 멍하니 앉았다가 아침을 먹고나서 공양주 할머니께 넌지시 말했지. 아무래도 이 절이 나허고 안맞는 것 같다고 그랬지. 할머니가 멋땜시 갈라고 하냐고 자꾸 물어요. 사실대로 이야그를 했더니 할머니가 웃는단 말여. 뭘 그까짓 거 갖고 그려, 나는 매일 보는디. 할머니가 이래. 새벽에 밥 지을라고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 때고 앉았으먼 까무룩하고 잠이 온디 그때 헛것이 나온다는 거여. 다 떨어진 몽당치마에 피가 묻은 저구리를 입고 볼이 푹 꺼진 젊은 여편네가 등에다는 축 늘어진 애길 업고서 부엌 문에 기대서서 이런다네. 할무니 밥 좀 줘요. 그라먼 할머니는 부지깽이로 부엌 봉당을 때리면서 고함을 지른대여. 이년, 어디 와서 허튼 소리를 하는게여 썩 없어지지 못해. 하먼 슬그머니 사라진다지. 내가 문득 생각되는 바가 있습디다. 하하 이거 무슨 연유가 있구나. 호국사 터에서는 왼손쟁이 오른손쟁이들이 한꺼번에 몇번씩 뺏고 빼앗기며 죽었는디 나라에서 재를 지내줄 때는 오른손쟁이들만 모셔 준단 말이거던. 내가 그래도 명색이 중인디 불쌍한 중음신덜을 그냥 몰라라 헐수야 웁지.

스님은 그날로 밥을 한 솥 그득히 해서 큰 함지에 담고 나물도 한 양푼 그득히 무쳐서는 수저도 수십개를 그 위에 그득히 꽂아 마당 가운데 제상 차려서 재를 올려 주었다지.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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