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게걸음치는 정부개편

  • 입력 1999년 3월 11일 19시 02분


예상했던 일이지만 제2차 정부조직개편작업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관련부처의 반발과 정치권의 당리당략, 개편대상기관의 이해관계와 도덕적 해이(解弛) 등이 맞물려 벌써부터 극심한 혼선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당초 16일로 되어 있던 정부안 확정시한이 23일로 연기됐다. 그러나 당정협의와 두 여당간의 의견조율 과정에서 주요 행정기능의 관할권 조정을 둘러싸고 절충과 나눠먹기식 타협이 이루어질 경우 정부조직 개편목표는 무색해진다. 자칫 제1차 정부조직개편 때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같은 우려가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정부 부처들이 정부개편안을 일제히 성토하고 나섰다. 그것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비전 없는 2류 시안’운운하는 발언도 있었다. 당정간에도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갈등도 심각하다. 인사 예산기능 등의 관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공동 여당간의 ‘영토싸움’은 내각제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더욱 국회 심의과정에서 야당의 반대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게 되면 정부안의 수정은 불가피해진다. 그렇게 되면 작고 유연한 정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는 목표는 기대할 수 없다.

당초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개편시안 자체가 제대로 된 행정개혁을 지향하기에는 미흡했다. 국가행정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도외시한 채 자율 경쟁 효율 위주의 정부진단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미래지향적 전략과 비전을 담아낼 21세기 정부조직의 기본틀을 그려내지 못했다. 권력구조의 변경가능성도 외면했다. 행정수요자의 입장과 앞으로의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성과 형평성도 간과한 면이 없지 않다. 국가기능의 공동화 우려 때문에 영국 뉴질랜드 등에서 재검토되고 있는 책임운영기관 제도 도입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부 여당의 조직개편 보완작업은 이같은 인식에 바탕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반발과 다가올 선거를 의식해 힘없는 몇몇 부처를 통폐합하거나 없애는 ‘모양내기’에 그친다면 더 이상 민간부문의 고통분담은 요구할 수 없다. 더욱 부처이기주의와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에 조직개편과 운영시스템 개편에 한계를 드러내면 정부의 총체적 개혁의지마저 신뢰성을 잃게 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행정수요자인 국민의 편에 서서 정부조직의 새 틀 짜기에 동참해야 하며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은 작년 2월 제1차 조직개편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수준이어서는 안되며 새로운 지식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지식창조형 행정체제의 구축을 겨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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