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낯뜨거운 「표절천국」

  • 입력 1999년 3월 7일 20시 30분


TV프로의 일본 것 표절시비가 또 불거져 나왔다. MBC 드라마 ‘청춘’이 일본 후지TV를 일부 표절한 사실이 밝혀져 방송국측이 서둘러 조기종영을 결정했다고 한다.

우리 방송환경은 전과 큰 차이가 있다. 외국 미디어그룹들이 다투어 국내 진출을 노리고 있고 특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로 일본 방송프로가 수입될 날도 머지 않았다. 국내 방송사들은 마땅히 위기의식을 갖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방송국 한쪽에서는 일본 TV프로를 거리낌없이 베끼고 있었다는 얘기다.

아직 완전한 개방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내에는 일본 대중문화가 가요 만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상당량 유입되어 있다. 젊은 세대들은 벌써부터 상당한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것을 표절한 TV프로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본 방송에 익숙해 진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일본 방송의 수요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문화의 경쟁력 측면에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 TV의 표절을 바짝 경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방송사들이 외국 프로를 베끼는 이면에는 시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터이니 쉽게 만들자는 안이한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드라마 ‘청춘’의 경우 방영 첫날부터 상당수 시청자들이 방송사에 문제 제기를 해왔다고 한다. 시청자를 얕잡아 봤다가 크게 혼이 난 꼴이다.

국내 방송의 표절을 눈감아 오던 일본 방송사들도 최근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 연말 일본의 한 TV사가 우리 쪽에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오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표절시비와 관련해 일본측 방송사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의 물결속에서 국내 방송사들은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로 머물고 있다.

국내 TV의 일본 표절은 해묵은 관행이다. 현재 방영중인 프로가운데 드라마 ‘청춘’말고도 여러 편이 표절의혹을 사고 있다. 방송 뿐만 아니다. 가요 영화 만화 광고 등 대중문화 전반에 이런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젠 남의 것을 베끼고도 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겐 ‘표절천국’이라는 오명이 붙어 버렸다. 하지만 대중문화계 내부에서 스스로 표절과 단절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프로 표절만 해도 방송사의 재발방지 약속은 그때일 뿐 여전히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1세기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표절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방송의 공영성이 어느때 보다 강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표절과의 단절’을 이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방송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방송계의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