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稅盜」그냥 둘건가

  • 입력 1999년 3월 3일 19시 21분


세금을 거둔다면서 세금 대신 뇌물을 챙기는 것도 세도(稅盜·세금 도둑질)이지만 거둔 세금을 헛쓰거나 사욕을 위해 파먹는 것도 세도다. 그런 점에서 경실련이 3일 조세의 날을 맞아 내놓은 98시민예산감시백서는 세도고발장이다.

경실련이 종합한 작년중 예산낭비 사례는 1천2백건에 이른다. 교육부의 교단선진화 사업, 국방부의 무기구입 원가계산 잘못, 정보통신부의 소규모우체국 고객순번표시기 설치, 농림부의 브루셀라백신 불량제조 등에서의 낭비가 열거됐다.

낭비규모가 작년 한해만도 10조원에 이른다는 경실련의 주장은 엄밀하게 검증해봐야겠지만, 정부는 이같은 고발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예산 남용이나 불법사용 사례는 감사원 등 정부 자체 조사에서도 끊이지않고 드러난다. 정치적 선심예산 편성도 사라지지 않았다.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이 빚더미에 깔려 있거니와 이들이 예산을 한푼도 헛되게 쓰지않았는데도 그만한 빚을 졌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작년엔 여러 공기업이 혈세 나눠먹기식으로 퇴직금을 듬뿍듬뿍 지급한 사례도 잇따랐다. 준(準)예산인 각종 기금의 방만한 운영에 따른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는 최근 ‘제2건국 한마음다짐대회’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회의’에 각각 8억, 9억원을 썼는데 이에도 예산이 낭비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조세의 날 기념사를 통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이 애국자”라며 “불성실한 납세자나 탈세자는 철저히 추적해 과세하겠다”고 말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예산 오남용(誤濫用) 불감증에 빠져 있는 가운데 ‘성실납세’만 강조하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산낭비 책임을 분명히 가려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태지출과 비효율적 집행 등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회계법 운용기준 등 제도를 최대한 강화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졸지에 국제통화기금(IMF)사태를 맞아 심각한 소득감소와 생계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정부 재벌 금융기관 등이 저질러놓은 부실을 메우기 위해 허리가 휘고 있지 않은가. 금융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지원과 적자재정 편성이 결국 세금으로 메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본격적인 재정개혁에 나서야 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상의 낭비요인을 법제도적으로 철저하게 제거하는 재정개혁 없이 개혁을 완결한다는 것은 허구다.

시민단체 등 국민 각계의 감시와 고발노력 확산도 요망된다. 예산낭비 사례를 찾아내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본보의 클린펀드 프로그램에도 많은 호응과 참여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