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해왕/금융개혁, 시장흐름에 맡겨야

  • 입력 1999년 2월 23일 07시 04분


국제금융기관과 외국의 투자은행들이 요즈음 잇따라 한국에 반가운 소식을 보내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불과 4,5개월 전만 해도 마이너스 부호가 가득했던 경제지표들을 내놓았다. 지금은 의욕적인 수치로 바꿔 놓았다.

신용평가기관과 외신들은 ‘부적격’ ‘부정적’ ‘추락’ 등의 수식어를 ‘적격’ ‘긍정적’ ‘회복’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금융분야에 대한 평가는 특히 긍정적이다.

▼ 정부주도 개혁엔 한계 ▼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 삭스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는 제삼자의 객관적 중간평가와 함께 한국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4개국,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의 구조개혁을 정밀진단한 이 보고서는 한국을 종합평가 수위에 올려 놓았다. 구조개혁 23개 개선항목 가운데 14개 항목에서 ‘현저한 개선’, 나머지 9개 항목에서는 ‘일부 개선 및 추가보완 필요’라는 평점을 매겼다.

4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전항목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부실금융기관의 폐쇄, 제도개선, 금융기관 통폐합, 부실채권 정리 등의 부문에서 특히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하나같이 정부 개입의 성과가 두드러진 항목들이다.

바꿔 말하면 신관치(新官治)라는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이 구조개혁을 앞당겼다는 평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같은 정부 개입이 계속 유효할 것인가.

돌이켜 보면 지난 1년여 동안 금융구조조정은 국제금융시장에 효율적으로 재진입하기 위한 사전정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시장논리보다는 힘의 논리를 앞세운 것이어서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자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정글을 빠져나오는 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경쟁무대에서는 통하기 어렵다.

골드만 삭스는 한국경제의 향후 과제로 은행의 경영효율성 제고를 꼽았다. 특히 은행의 금융중개 및 신용배분 기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중심의 개혁을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장의 흐름에 맡기되 그 흐름에서 앞서갈 체질을 만들라는 조언이다. 요컨대 금융산업의 경영혁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경영혁신은 책임경영체제의 확립 및 조직구조의 선진화, 리스크관리 능력의 제고, 내부통제 시스템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비상임이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사회를 개편하는 등 경영시스템을 정비하면서 무담보 신용대출을 늘리는 것은 경영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반가운 조짐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금융시장에서 시장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다.

▼ 新관치금융 끝낼때 ▼

금융시장에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정착되려면 무엇보다도 금융기관의 진입과 퇴출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시장참가자의 공인을 받은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출입이 결정돼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단행된 부실 금융기관의 대거 퇴출은 그런 의미에서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이젠 진입의 문을 열 차례다.

이와 함께 관치금융도 이번 기회에 청산하고 넘어가야 한다. 정부는 금융기관이 상업적 원리에 바탕을 둔 금융기업으로 변모할 수 있도록 금리결정, 신상품 개발, 인력 및 점포 확충 등 경영활동에 대해 실질적 자율권을 부여하고 인사에도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정부 개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도 단견이다. 시장경제에서 후진적 제도나 관행을 일소하고 새로운 금융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스템 디자이너로서의 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강조돼야 한다. 금융감독 기능도 지금보다 강화하되 시장참가자들에 의한 자율적인 감시체제가 중시되는 시장중심형 감독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한국인들에게 해외의 긍정적 평가는 무척 고무적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의 성적표는 이제 막 과락 단계를 넘어섰다.

지금부터는 예선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펼치는 본선무대이다. 다시 출발점에 서서 1년전의 그 비장했던 각오를 되살려야 한다.

정해왕<한국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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