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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월 26일 11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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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만만한 것'이라고 말한 한 신세대 젊은이 기사로 인해 요즘 컴퓨터 통신망이 전쟁터로 변했다.
베르사체 아르마니 정장만 스무벌, 취미는 춤추고 노는 것, 주말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 운운하는 기사내용은
경제위기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서민들의 울분을 자극할만한 여지가 분명히 있다.
문제는 동아일보측의 기획의도는 도외시한 채 이번 기사와 그에 대해 해명기사에 대한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과
인신공격들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채 PC통신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건전한 비판과 대안도 있지만 화장실 낙서보다 더 원색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제는 PC통신의 폐해도 인터넷 음란사이트에 못지않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됐다.
더구나 독자들의 항의에 대해 일부 표현의 문제점을 시인하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전달하려 했다'고 해명한
데스크에 대해서까지 그처럼 원색적인 표현들을 쓴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기사를 쓴 여기자와 데스크에 대해 쏟아지고 있는 욕설들은 한마디로 익명성이라는 편리한 보호막 아래서 행해지고
있는 '언어폭력'과 '성폭력'에 다름아니다.
특히 여사원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고소까지 당하는 요즘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통신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 폭력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PC통신의 도마위에 오른 당사자들이 우울증과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동아일보가 언론의 자유를 들어 문제의 기사를 실었다면 독자인 pc통신 회원들도 표현의 자유를 들어 기사를 비판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누린 언론의 자유는 매도하면서 표현의 자유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상위의 가치에 의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인정하지 않은가.
이는 사회의 건강성 문제이며 문화의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pc통신은 여론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듯 보인다.
폭력과 매도, 이성을 잃은 의견개진은 건전한 여론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pc통신의 폐해가 심각함에도 이를 제어할만한 장치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또다른 '마녀사냥'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현정부가 어느 때보다 문화적 색채를 강조한다면 신세대들에게 파급효과가 큰 pc통신의 건강성에도 한번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pc통신 업계도 자체 정화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그래도 안되면 검찰이라도 나서야 한다.
동아일보를 사랑하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다시는 이번과 같은 논쟁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PC통신 업체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이영일<개인사업·서울 강북구 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