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득갑/‘유로’출범은 위기이자 기회

  • 입력 1999년 1월 4일 19시 36분


유럽 11개국의 단일통화인 유로(EURO)화가 1일부터 공식 출범했다. 유로화 출범으로 2억9천만명의 인구에 미국과 거의 맞먹는 경제력을 지닌 강력한 단일통화권이 탄생했다. 유럽은 이제 단일시장 뿐만 아니라 단일화폐마저 갖게 됨으로써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유로화가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되면 될수록 유럽은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된다. 기업들은 유로화 사용으로 각종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유럽 기업들은 유로화의 국제화를 앞당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자족체제 구축 ▼

한 조사에 따르면 20% 가량의 유럽기업들이 금년초부터 당장 거래통화로 유로화를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다국적기업들은 거래통화뿐만 아니라 회사 공용통화로서 유로화를 사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납품업체들에도 유로화 사용을 적극 종용하고 있는데 머지않아 이들과 거래관계에 있는 역외 업체들에도 유로화 사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유로화는 미달러와 함께 국제무역의 결제통화로 폭넓게 사용될 전망이다. 또한 유로화는 중앙은행의 외환보유 통화나 외환거래 수단으로서 그리고 민간 포트폴리오 투자에서도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이유들로 인해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에는 기존의 미달러 독주체제를 달러―유로의 양극체제가 대신하는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유로화 출범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경제에 적지않은 파급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로서 유로화의 비중이나 한(韓)―유럽연합(EU) 경제관계를 감안하면 실물분야는 물론 금융분야에서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국내 업계에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우선 긍정적인 측면에서 유로화는 유럽경제에 활력소로 작용하여 추가성장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수출을 늘리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유로화로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환관련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유로화 결제요구에 따른 준비비용이 소요되고 무역전환효과가 예상된다는 점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유로화는 유럽기업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역내 거래를 활성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62% 수준을 보이고 있는 역내 교역이 증가하여 유럽의 자급자족 체제는 더욱 심화될 전망된다.

▼외환정책 대수술을 ▼

여기서 우리는 유로화 출범에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아직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당사자인 민간업계의 대응노력도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우선 정부로서는 미달러에 의존하고 있는 기존의 환율정책이나 외환보유정책이 유로화 출범이후에도 계속 유효할지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유로화 출범을 계기로 기존의 외환정책에 일대 수술을 가할 방침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은 미달러에 편중되어 있는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을 유로화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지금부터라도 기업들은 유로화 출범이 가져올 기회를 극대화하고 위기는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유럽 거래선의 이탈을 막기 위해 유로화 거래체제를 하루빨리 갖추는 일. 현재 금융기관이나 소수 대기업 정도가 유로화 대응에 나서고 있을 뿐 대부분의 중소 수출업체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유로화 대응에 소홀히 할 경우 유럽시장에서 설 땅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수출업체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대기업들은 유로화 출범을 유럽시장 공략의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경영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자금조달과 환관리를 유로화로 집중하는 한편 판매 및 물류망 정비와 아울러 가격전략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지진출도 더 늘려야 한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정부와 업계가 총체적인 대응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유로화 출범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득갑<삼성경제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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