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56)

  • 입력 1998년 12월 22일 19시 40분


화적 ⑫

브라질 출발을 며칠 안 남기고 조국은 ‘인간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인사 사고를 냈다. 어두운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전거를 피하다가 무단횡단하던 취객을 그만 자기 차의 보닛 위에 태워준 것이었다. 조국은 선처를 호소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어디까지나 ‘정당방위’라는 거였다. 역시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가 된 채 사장이 2년이나 렌트카를 무면허로 끌고 다닌 것을 보아온 조국으로서는 인간적으로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당장 브라질에 가지 못하게 될까봐 그의 얼굴은 납빛이 되었다.

김부식이 내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왔다. 다행히 피해자가 응급실에서 간단한 처치만 받고 돌아갈 정도의 가벼운 사고였다. 김부식은 경찰출입 기자로서의 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조국이 브라질에서 열리는 중요한 국제 대회에 참석할 한국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이며, 아울러 브라질 교민사회에 한국 예총의 지부를 설립할 공보부의 민간사절로서 급히 브라질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텔레비전의 구정특집과 신문사의 기획기사도 조국의 투박한 손에 다 달려 있었다. 조국은 약간 미심쩍어하는 한편에서 ‘인간적인’존경을 받기도 하며 일단 풀려났다.

조국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승주 또한 사연이 없을 수 없었다. 승주의 여권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은 출발 날짜에서 꼭 이틀 전에 통보되었다. 예비군 훈련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공항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었다. 말하자면 여느 거물처럼 출국정지 상태였다. 승주는 부랴부랴 벌금을 내러 갔다. 그러나 공무원의 퇴근시간이 지나 있었다. 특별 수송작전을 편 끝에 출발하기 바로 전날 오후에야 비자를 받은 승주는 기쁨과 감격이 더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인생에 늘 돌발과 걸림돌이 생기는 까닭은 간단했다. 대비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쁜 경우를 일일이 예상하는 사람의 행동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행동하는 사람은 그 반대이다. 나쁘게 될 경우를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늘 모험이 따르고 모험담이 생겨난다. 그들이야말로 광막한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뒤꿈치에 밟힌 신천지의 열쇠를 줍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없다면 세상은 조용하나 진부할 것이다. 그러나 동행은 피곤하다.

나는 그런 인간들과 함께 생면부지의 땅인 지구 반대쪽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일어난 일들은 도저히 이 지면에 다 담을 수 없다. 승주가 흑마와 백마를 함께 사서 러브호텔에 들어갔다가 어떤 봉변을 당했는지. 마늘이 정력에 좋다, 아니다 은행이 더 좋다, 아니다 구기자다 달팽이다, 옥신각신하다가 리오데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를 놓친 일. 헐레벌떡 출구로 가보니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아직 너댓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며 브라질 사람들이 “시간을 다 지키려고 하다니, 고지식한걸?” 하는 눈으로 우리를 서로 구경하려는 바람에 그만 한국말로 ‘큰형님!’을 부르짖고 만 일. 여자 손님들이 모두 속옷만 입고 춤을 추는 바에 갔다가 총질이 벌어져 탁자 밑으로 숨은 일. 호텔 안에서 커피포트에 라면 끓여먹다가 소동이 난 것, 그것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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