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벼랑에 선 클린턴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9시 59분


미국 하원이 빌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4개항의 탄핵사유 중 연방대배심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연말 미국 정계가 온통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클린턴 진영에서는 견책정도로 끝내기 위해 공화당과 타협을 시도하고 있지만 성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내년초 개원하는 상원 본회의에서 최종 결판이 내려질 전망이다.

클린턴은 절대 사임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의 지도력은 이미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역사상 두번째로 하원에서 탄핵 결정을 받은 것도 그렇지만 탄핵 내용도 성추문과 관련되어 있다. 클린턴에게는 지울 수 없는 불명예다.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대통령의 성추문이기 때문에 미국의 국제위상과 신뢰도 크게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가 아무리 국내외적으로 치적을 쌓았다 해도 미국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은 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의 지도력이 흔들리고 정계가 혼란에 빠진다면 그것은 미국 자체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전체로 볼 때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지도국가로서 수행해야 할 책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은 정치 군사 경제 환경 등 지구촌의 모든 현안에서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세계의 이목이 지금의 미국 국내 정정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이유도 다름아니다. 미국이 맡고 있고 또 맡아야 할 역할에 행여 차질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인 것이다.

한반도 문제만해도 그렇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는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과 로켓발사 등으로 새로운 긴장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더구나 미 의회는 내년 5월말까지 북한의 핵문제 등 현안 해결에 성과가 없을 경우 대북(對北) 중유지원을 중단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미(北―美)제네바 핵합의 폐기론마저 강력히 대두될지 모른다. 그럴 경우 이미 상처를 입은 클린턴행정부의 대(對)의회 입지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한반도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는 곤란하다. 어떤 경우에도 한미(韓美)공조체제는 일관되게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미 상원에서 최종 탄핵결정이 내려지려면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1백개 의석 중 55석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으로서는 클린턴 탄핵에 역부족이기는 하다. 그러나 앞으로 여론추이에 따라 민주당내 탄핵 동조표가 늘어날 수 있다. 벼랑에 선 클린턴으로서는 필사적으로 여론을 붙잡아야 할 형편이다. 그만큼 상황은 유동적이지만 이 문제는 결국 미국 국민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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