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낙제수준 문화인프라

  • 입력 1998년 12월 9일 19시 10분


전국 5백87개 문화기반시설 운영을 전문가들이 평가한 결과 대부분 낙제점 이하의 평점을 받았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방의 문화시설들이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열악한 상태로 ‘굴러가고’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9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평가 결과를 보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던 구호는 말 그대로 구호에 그칠지 모른다는 걱정을 낳는다.

▼건국 후 처음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전국 공공도서관의 77%가 60점 미만의 낙제점을 받았다. 시립 등의 공립박물관은 24곳 중 20곳이 40점 이하의 평점을 받았다. 51개의 문예회관 평가에서도 70점 이상의 우수한 회관은 한 곳도 없고 50점대가 겨우 4곳, 나머지는 전부 40점대 이하라니 할 말을 잊는다. 한마디로 국민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돼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좀더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개탄스러운 항목이 한 둘이 아니다. 공립박물관 관장의 경우 전문가가 맡고 있는 곳은 2곳에 불과하고 17곳은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맡고 있다. 이들이 운영하는 박물관에서 과연 관람할 거리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문예회관 관장도 지방 시군은 지자체 공무원이 맡아 관리하고 있다니 회관을 왜 세웠는지 모를 일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래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등과 같은 국제적 문화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그러나 도서관 박물관 문예회관같은 문화 인프라들이 낙제수준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문화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벗어날 길이 없다. 문화 인프라를 이대로 둔 채 21세기를 맞을 수는 없다. 개혁과 구조조정이 문화기반시설에도 절실한 시점이다.

〈임연철 논설위원〉ynch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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