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겉도는 재벌개혁

  • 입력 1998년 11월 29일 20시 07분


금융과 재벌에 전방위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5대그룹이 마련한 항공기 철도차량 석유화학 정유 등 4개업종 사업구조조정안 중 정유를 제외한 3개업종 빅딜안이 사실상 채권단으로부터 거부당했다. 또 5대그룹이 부실계열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신규여신을 중단하겠다는 방침도 재천명됐다. 경영정상화 노력이 미흡한 조흥은행 경영진을 전격 사퇴시킨 것도 금융 재벌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금융과 재벌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한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자율에 맡겨서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판단과 개혁의 속도와 강도가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상 재벌개혁이 실패하면 나머지 기업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을 이끌어야 할 금융개혁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재벌개혁, 그 중에서도 5대재벌 개혁은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을 뿐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부실계열사 퇴출과 통폐합이 그렇고 부채비율 감축과 경영투명성 제고, 기업주의 독단적 지배구조 등도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번에 사업구조조정위원회로부터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받은 빅딜안도 금융지원 등의 혜택만 바랄 뿐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손실부담 의지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렇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율로 안되면 타율로라도 구조조정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하루빨리 기업 금융구조조정을 끝내고 실물경제를 부추길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써야 할 시점이다. 해외요건이 호전되고 있는데도 미미한 구조조정의 성과가 국제신인도 회복과 외자유치의 걸림돌이 되게 할 수는 없다.

물론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또한 정책실패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기업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 금융개혁이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적자가 쌓여가는 부실기업을 그대로 놔둘 경우 결국 국민이 떠안아야 할 구조조정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뿐이다.

그동안 재벌개혁이 제대로 안된 데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 재벌 구조조정이 궁극적으로는 재벌 스스로의 생존전략임을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고 구조조정을 압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는 재벌의 고삐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 정부개입에 따른 부작용보다 방임에 따른 손실이 더 크다면 기업개혁의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제시하고 강력하게 실천해야 한다. 기업개혁은 당초 재계와 약속한 5대원칙이, 5대재벌 빅딜은 통합기업 및 업종의 사업성 등이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