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연탄과 함께 「옛인심」도 남았어요』

입력 1998-11-04 19:00수정 2009-09-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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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빠끔히 연통이 삐져 나와 있다. 번개탄 한 장과 연탄 두 장이 들어가는 자그마한 아궁이도 있다. 그리고 연탄 서너장쯤이야 마음 편하게 빌려주는 풋풋한 인심도 있다.

수십층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의 강남. 이곳에 아직도 구시대 유물인 연탄을 때며 겨울을 나는 아파트촌이 있다. 건물 벽 곳곳에는 ‘ㄱ’‘ㄴ’자 땜질 흔적이 있고 베란다 철창은 녹에 절어 있다. 그랜드백화점 계몽아트센터 그리고 신축 공사중인 월마트 등 빌딩 숲속에 섬처럼 남아있는 강남구 역삼동의 영동아파트가 그곳이다.

이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23년전. ‘강남 갈대밭’이 사라지고 개발이 시작된 초창기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2천5백90가구 모두 연탄을 땠지만 세월이 흐르며 13평짜리 이 아파트도 기름, 가스 보일러로 대체됐다. 그러나 아직도 5백여세대는 연탄을 땐다.

13년간 이곳에서 연탄배달을 했다는 김모씨(42). 연탄가게가 4곳이나 됐지만 이제는 김씨만 덩그러니 남았다. 김씨도 가게는 92년 정리하고 요즘은 차떼기 배달만 한다.

“5층 꼭대기까지 지게로 지어 나르는데 1백장쯤 올리고 나면 진이 다 빠지지. 요즘 젊은 애들은 상상도 못할거야.”

“그래도 인심이 좋지. 배달 끝나면 2천∼3천원씩 팁도 주고 말야.”

이곳의 전세가는 1천6백만∼3천3백만원. 싼 맛에 오는 신세대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기구한 운명’에 적응하는 방식은 두가지. 순응형의 김숙진(金淑眞·23)씨. “집게로 집은 연탄을 바람개비 돌리듯 돌려도 안 떨어뜨린다”고 할만큼 적응이 빠르다. 그러나 한사코 전기장판을 고수하는 ‘저항형’도 적지 않다. ‘내 사전에 연탄은 없다’는 박태호(朴泰浩·28)씨. “연탄 어떻게 때는지 몰라요”가 이유다.

이곳 연탄 아파트에는 한가지 독특함이 있다. 서로 믿는 따뜻함이다. 아파트 동 사이사이에 쌓아놓은 연탄은 분명 누군가의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집어갈 수 있다. 연탄 몇장으로 ‘떼돈’벌 일도 아니니 훔쳐갈 사람도 없지만 또 한 두장 집어 간다고 해서 화를 내는 빡빡한 사람도 없다. 마음 따뜻한 이곳 사람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번개탄을 깔고 연탄불을 피우며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올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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