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이 돌게 하라

  • 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18분


정부의 예측과는 달리 내년에도 우리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치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았다. 2%성장을 전제로 짜여진 내년도 예산과 경기대책이 제대로 꾸려질지 걱정이다. 그런 가운데 정부와 통화당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내놓았다. 강제적인 금리인하와 통화의 대량공급도 그 하나다. 그러나 아무리싼 값에 많은 돈을 풀더라도 시중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된다.

사실 최근까지도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데 반대해 온 한국은행이 방향을 바꾼 것 자체에도 찬반 양론은 있을 수 있다. 공개시장조작금리와 통화확대를 통해 시중금리 하락을 본격적으로 유도하려는 이번 조치가 한은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속사정이야 어떻든 한은조치 이후 콜금리에 이어 은행의 대출금리와 시중금리가 속락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기업의 금융부담을 덜어 경쟁력을 높여주고 가계의 소비여력을 올려줄 수 있는 여지는 일단 확보된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번 조치 후 얼마나 돈이 잘 돌 것이냐 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의 신용경색은 그 원인이 유동성부족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비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돈을 안쓰고 자꾸 예금을 하는 반면 은행은 기업들의 신용위험을 이유로 대출보다 한은예치 형태로 돈을 굴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은이 파는 환매채 수익률을 낮춰 은행돈이 한은 금고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도록 한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아직도 일반대출에 선뜻 나설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가계나 기업에 대한 대출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한 경기부양조치는 효과가 의문시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은행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회수가 불확실한 기업에 돈을 대출하라고 은행에 강요하기는 어렵다. 정부 한쪽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무담보 대출을 촉구하지만 감사기관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따지고 드는 것이 현실이다. 또 무책임한 대출로 은행이 다시 부실해지는 것도 옳지 않다. 기업구조조정을 앞당겨 빨리 부실기업을 추려내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한 방법이다. 은행직원들에 대한 규정상 면책범위를 확대해 소신껏 대출토록 하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경제는 선택이다. 정부가 예상되는 각종 부작용을 감내하면서도 경기부양쪽을 선택한 만큼 이번 경기대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실패한다면 정부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잃게 된다. 성패는 일차적으로 돈을 얼마나 잘 돌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회복 여부를 결정하는 큰 갈림길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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