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은택/원군없는 러시아

  • 입력 1998년 9월 3일 19시 30분


1일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모스크바의 전철과 버스 요금이 50%나 뛰었다고 한다. 마치 아무리 미국대통령이라지만 섹스스캔들로 지도력을 잠식당한 빌 클린턴이 뾰족한 지원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일반적인 전망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클린턴대통령은 정상회담후 기자회견에서 전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같은 날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러시아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을 열자고 각국 정상에 전화를 걸었으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마 정상들은 “지금 세계경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러시아가 아니라 일본경제니까 일본문제나 잘 해결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상들은 또 정상회담을 열었다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갖고 있는지 모른다.

27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G7회담에 응할 수 없다”고 딱잘라 말했다. 콜총리가 좀더 솔직했다면 “여론조사에서 야당에 뒤지고 있는 판에 러시아 문제에까지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그는 러시아가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을 때도 분명하게 지원을 거부했다. 캐나다도 3일 더이상 러시아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제위기의 소용돌이가 아시아에 이어 러시아로 확산되면서 세계경제가 함께 요동치는 요즘.

결코 남의 일이 아닌데도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처럼 일제히 힘이 빠져 개입을 거부하고 있는 강대국 정상들.

지구촌은 바로 ‘지도력 부재’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홍은택〈워싱턴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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