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인제/정치개혁 위한 수사를 하려면…

  • 입력 1998년 9월 2일 19시 39분


지난해 대선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측 인사들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와 거액의 검은 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된 일부 여야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급류를 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과거와 같이 여야가 법정선거운동비용을 초과하는 엄청난 금액의 선거자금을 사용했을 것으로 국민 대부분은 보고 있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조성해 사용했다면 여야를 불문하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 각종 이권에 개입해 검은 돈을 받은 여야정치인도 처벌받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번 대선자금수사가 시작된 시점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된 이총재가 축하 꽃다발을 채 내려놓기도 전이라는 것도 미묘하려니와 대선당시의 국세청장이 대선자금 불법모금에 깊이 간여한 혐의로 전격 구속된 것도 충격적이다. 전해지고 있는 소식들도 경악스럽다. 당시의 국세청장이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압력을 가하여 5대 대기업으로부터 38억원을 거두어 전달하였다는 것이고 나아가 1백여개 기업으로부터 5백억여원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 개혁의 방법 당당해야 ▼

국가의 조세대권이 불법선거자금의 모금수단으로 전락됐다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야당이 즉각 정치보복 야당파괴공작이라고 항변하고 나오는 것을 간단히 억지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어 보인다. 과거의 표적사정 보복사정 시비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많은 사람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치권 사정이나 대선자금 수사에서도 그 잔영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과연 이 정치권 사정이나 대선자금 수사가 총체적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정치분야에서 실천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지작업인가. 아니면 여소야대 정국의 개편구도와 맞물려 있는 다른 목적의 포석인가.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정치가 가장 부패한 비효율 저생산 후진 구조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그 개혁은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개혁이 긴요한 만큼 개혁의 방법도 당당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당당한 개혁에 대해서 아니 당당하지 못한 개혁의 허구에 대해서 지난 정부에서 이미 많은 교훈을 얻은 바 있다.

개혁의 당당함은 도덕적 우위에서 나오고 그 도덕적 우위는 통상 흠이 없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의 과오까지도 인정하는 솔직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진지함, 모두가 함께 하려는 겸허함에서 나온다. 지난 정부가 이 모든 면에서 실패했음을 똑똑히 보아왔다.

우선 이번 대선자금수사의 칼을 든 검찰이 지난 정부의 대선자금수사는 왜 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자기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난 대선시 이른바 DJ비자금 수사를 유보한 원려(遠慮)와 똑같은 고뇌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대선자금수사는 착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와 다른 후보측의 대선자금의혹도 함께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명백히 표명해야 한다. 특별검사제도입 명분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다음 여권은 자신의 허물마저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정치개혁의 제단앞에 스스로를 희생할 각오를 보여야 한다. 편파시비를 희석시킬 읍참마속의 외견속에서 용도폐기해도 좋을 우군 몇몇을 자르는 시늉만 한다든가 정계개편의 의도가 관철되는 한도내에서만 이를 이용하면 국민의 정치불신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의 대의앞에서 자기부정의 용기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

▼ 여야 함께 희생각오를 ▼

그리고 이 기회에 여야가 함께 고비용정치구조 혁파 및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하고 가시적인 프로그램을 내놓고 당장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문제는 국민의 선택일 것이다. 정치권사정과 대선자금수사를 단순한 정쟁의 연장이 아닌 정치개혁의 실천으로 승화시키느냐 못하느냐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다.

우리정치의 부정적인 유산을 과감히 청산함으로써 총체적인 사회개혁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치전반에 대한 개혁으로 나아가게 할 때에만 정치권사정과 대선자금수사는 정치개혁의 시발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대선자금수사가 일각의 주장대로 야당파괴와 여소야대 구도개편이라는 목전의 단기목표를 위한 권력투쟁으로 끝나고 만다면 국민은 칼자루를 번갈아 가며 쥔 자들이 벌이는 투옥과 사면의 지루한 활극을 바라만 보는 관객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박인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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