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우리의 「불행지수」는 얼마인가?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미국에선 선거때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운데 불행지수(Misery Index)란 것이 있다.

경제 실정을 공격하는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76년 미국 대선. 미국 남부의 땅콩 농장주 지미 카터는 포드를 향해 경제를 엉망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대공황 이후 가장 큰 불행을 초래했다고 몰아붙였다.

기발한 ‘선거 마케팅 상품’으로 경제문제를 이슈화하는데 성공한 카터는 결국 대통령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4년 뒤 로널드 레이건은 카터의 창안품인 불행지수를 들고나와 카터가 포드보다 나라경제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공격했다. 경제적인 패배주의에 시달렸던 미국의 유권자들은 서슴없이 카터를 갈아치웠다.

두 대통령을 몰아낸 ‘불행지수’는 다름아닌 인플레이션율에 실업률을 더한 수치다. 두 지표의 공통점은 상실감이다. 인플레는 봉급생활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가고 실업은 소득감소로 생활을 궁핍하게 한다. 불행지수는 바로 생활불안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인 셈.

그렇다면 우리의 불행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내일이 안보이는 지금같은 격동의 상황에선 통계청의 공식통계를 따져봐야 별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불행지수에서 물가보다 몇배의 폭발성을 갖고 있는 실업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적게 잡아 공식통계의 4∼5배는 봐야 한다. 이른바 유보실업 때문이다. 유보실업이란 기업 안에서 없어도 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이 안고 있는 유휴 인력. IMF사태 이전에 나온 부즈 앨런 한국보고서에 의하면 96년말 현재 한국경제의 총 유보실업률은 9%선. 그러니 실제 실업률은 통계청 발표보다 9%포인트가 더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보수적으로 잡아 그렇고 IMF 이후의 기업경영을 감안하면 도무지 가늠조차 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우리경제가 몰락한 구조적 원인이 어디에 있고, 나아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단의 조치없인 기업회생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나라가 만들어내는 일자리 숫자와 경쟁력 수준은 궁극적으론 노동생산성이 결정한다.

노조가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는 한, 그리고 기업이 해고를 못하도록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는한 경쟁력은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 떨궈내야 할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해고를 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부담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져야 한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다름아닌 대학과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청년들이다.

우선 내년 4년제 대학 졸업예정자가 19만여명, 전문대학 졸업예정자가 18만여명, 여기에 실업계 고교 졸업예정자가 27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얼마만큼 일자릴 갖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년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1,2년 청년실업자 신세가 되면 그 다음엔 반반한 직장을 갖기 힘든 게 현실.

그렇다면 이들은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평생을 2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절망이 극도에 달하면 파괴적 충동이 증폭되고 극단적인 사회분열과 계층갈등이 촉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사회는 추락하고 말게 된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일자리 창출이다. 유인책이 없는 인턴제는 성공할 수 없다.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직업훈련도 아무짝에 도움이 안된다. 정부 처지가 어려운 것은 이해가 가나 인력문제에 관한 한 지금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한국경제의 미래전망이 날아갈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다.

이인길<정보산업부장>ku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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