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46)

  • 입력 1998년 6월 18일 07시 08분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표정을 하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어떻게 해서 들어간 일류 여자중학교인데, 그 교복을 가져가다니, 하는 듯한 얼굴. 마치 미경이 언니가 언니의 합격증을, 그래서 그 여학교 출신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언니의 미래를 도둑질해간 듯, 분한 표정이었다.

―기가 막혀서 아니 반지랑 은수저랑 다 놔두고 애들 옷만 훔쳐가는 식모얘기는 듣다듣다 내 또 처음 듣네… 게다가 교복을 훔쳐가다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니냐… 그나저나 푸닥거리를 하든지 해야지, 내가 요즘 왜 이리 인간난리를 겪을까….

저녁이 어둑거리며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놀란 우리들을 진정시킨 후 일단 밥을 안치고 소금에 절여놓은 꽁치를 석쇠에 얹어 연탄화덕에 구우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꽁치 위에 얹힌 굵은 소금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언니도 오빠도 나도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모두 외출에서 돌아온 차림 그대로 앉아서 시무룩했다. 아버지는 장독대 뒤를 돌며 뻐금뻐금 담배연기만 피워올렸다.

―걔가 소개해 준 업이엄마 얼굴을 봐서도 그럴 아이가 아닌데, 여보 어떻게 할까요, 내가 내일 광주에 내려가봐야 할 것 같은데. 비행기표를 좀 구해줘요.

저녁 식사 도중 밥을 거의 뜨지 못하고 있던 어머니가 비장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업이엄마가 미안해서 제돈으로 내겠다고 하니까 당신은 표만 구해줘요.

―글쎄 혹시 모르니까 며칠 기다려 보면 어떨까. 업이 엄마가 연락해 볼 수도 있는 거고. 또 그 아이가 꼭 제 집으로 갔다는 보장도 없고.

―아니요. 짚이는 게 있어요. 이런 일일수록 시간을 끌면 안되는 거고. 어쨌든 일단 집에 가서 부모를 족치든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어머니뿐만은 아니었다. 난데없이 교복을 도난당한 언니, 그리고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하고 도둑하고 참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자 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어머니의 말대로 낯선 사람들이 다가와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절대 따라가거나 웃거나 믿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미경이 언니의 검고 큰 눈동자 어디에 남의 물건들을 그리 쉽게 집어가버릴 뻔뻔함이 있었는지.

다음날 어머니는 업이엄마와 함께 광주로 떠났다가 그 다음날 사라진 우리들의 옷을 커다란 보따리에 싸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참 우습다구 해야 할지 기가 막히다구 해야할지.

돌아온 어머니는 감을 깎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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