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광웅/지역주의의 멍에

  • 입력 1998년 6월 5일 07시 50분


어제 끝난 지방선거는 예상했던 대로 이 나라 정치의 지역분할구도를 다시금 확인해 주었다. 광역시도지사의 판도만 놓고 보면 동야서여(東野西與)가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대선을 끝낸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아 그 구도에 큰 변화가 생길 리 없다.

게다가 지역별로 선거연합을 벌였기 때문에 예외가 있긴 했지만 승패의 결과는 자명했다. 지역주의의 멍에는 지방선거이기에 더 확실했는지도 모른다.

▼ 무관심 속 실망만 안겨 ▼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점 말고도 이번 선거는 52.6%라는 매우 저조한 투표율로 미루어 참여민주주의에 위기가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먼저 과정에서는 ‘지역주의 선거연합’때문에 정치시장이 제대로 된 경쟁판이 아니었고 내다 파는 상품은 정당바꾸기를 떡먹듯이 하는 천민 엘리트로서 햇볕(권력)에 곧 바랠 정도로 저질이었다. 여기에 광고내용은 거창하고 허황됐으며 난장엔 흑색선전 상대비방 고소고발이 판을 쳤고 미디어 토론 역시 후보자를 초등학생 다루듯 했으며 진행은 기계적이고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정의 특징이 그러했기에 유권자들이 정치에 흥미를 느끼기는커녕 냉소와 혐오감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정치는 그런 것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을 것이다. 경쟁이 치열했던 몇곳을 예외로 한다면 이런 무관심이 이번 선거를 맥빠지게 했다.

한편 결과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여권이 승리해 앞으로 정치가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결과는 미리 짜놓은 판대로였기 때문에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것이 별로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기 어려운 선거였다.

나아가 여야간의 승패는 그들의 세력 확대와 축소에는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국리민복(國利民福)과는 꽤나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리 즐거운 일이 되지 못한다.

공정경쟁이 본질인 민주선거는 정치판에 변화를 가져오고 덩달아 유권자에게는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이번 선거는 철저한 무관심속에 희망은커녕 실망만 안겨준 결과를 빚었다.

지난해말 중앙정치에 보였던 관심과 열기가 냉기로 바뀐 것은 IMF 한파에다 선거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그러한 선거이긴 했지만 일단 끝났으니 그 결과 정치는 얼마나 나아지고 국난 극복은 얼마나 잘 될까에 관심이 쏠린다. 유감스럽게도 나라가 이 꼴이 된데 대한 일차적 책임은 돈을 좇으며 스스로 비천해지고 무책임해진 정치, 그리고 고식적인 권위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행정에 있다. 같은 판이 계속되는 한 한국정치의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선거에 졌다고 해서 야당이 분열하면 그것은 긍정적인 정계개편이 못된다. 야당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분파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정치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둘째, 사람만 오가고 숫자만 달라질 뿐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또 반복될 것이기에 한 때의 개편은 오직 정치세력의 변화일 뿐 국리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셋째, 만일 정당이 3∼5개로 다당제가 된다면 그것은 내각제 정부를 전제로 했을 때 바람직한 것인데 정부형태에 대한 합의없이 정당지도가 다시 그려진다는 것은 또 다른 정치낭비를 초래한다.

▼ 당선자 일꾼 각오해야 ▼

목표의 상실, 자유의 상실 그리고 의미의 상실로 특징지어지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선거도 정치도 행정도 아무런 의미와 희망을 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한 고비를 넘기며 직접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을 당선자와 유권자가 함께 실천해 대의제의 결함을 보충하는 길밖에 없다. 당선자들은 지방행정개혁을 선도하는 일꾼으로 변신하기 바란다.

김광웅<서울대교수·정부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