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후보검증⑤/부산시장]안상영-하일민-김기재

  • 입력 1998년 5월 16일 19시 30분


여권 불모지대인 부산은 한나라당 안상영(安相英)후보와 무소속의 김기재(金杞載)후보가 불꽃튀는 접전을 벌이고 있다.

행정경험이 풍부한데다 관선 부산시장 출신인 두 후보는 공직에 있는 동안 고속승진을 거듭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안후보는 ‘기술관료’로, 김후보는 ‘내무관료’로 서로 판이한 분야에서 성장해왔다.

여권 단일후보로 출마한 국민회의 하일민(河一民)후보가 어느 정도의 득표력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한나라당 안상영후보

안후보는 30여년의 공직생활 동안 승승장구해 오면서 공직사회에서 ‘기술관료’로는 처음으로 차관급 시장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63년 토목기사보(7급)로 서울시 토목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70, 80년대 고속성장시대의 각종 대형사업을 도맡아 정통 기술관료로서 명성을 떨쳤다.

80년대 서울시 도로국장 도시계획국장 종합건설본부장을 지내 현존하는 서울의 대형시설물 중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 국내 최초의 지하철인 서울 지하철 1호선 구간의 설계 시공작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목동신시가지, 올림픽대로 건설과 둔치조성을 통한 한강의 공원화 등 한강개발사업을 주도했다.

부산시장 재임(88∼90년) 때도 현재 부산시 장기발전계획의 모태가 된 ‘2000년대 부산 발전구상’을 기획, 해운대신시가지와 낙동강권 개발과 도시광역순환도로 건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그에게 ‘불도저’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저돌적인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다소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 영도 앞바다에 항만과 국제회의장시설을 갖춘 인공섬 개발계획을 세웠다가 환경단체의 반발로 1백66억원의 용역비만 날린 일.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안후보를 개발독재시대에나 걸맞은 반(反)환경적 행정가라고 비판한다.

안후보는 호적에 전남 광양이 출생지로 기록돼 있어 ‘호남출신’이라는 출생지 시비에 휘말려 있다. 이에 대해 안후보는 “출생 당시 관례상 부친의 본적지였던 전남 광양에 출생신고를 했을 뿐 실제 태어난 곳은 부산 부산진구 부전1동이며 초 중 고교까지 다닌 부산토박이”라고 밝혔다.

◇국민회의 하일민후보

하후보는 ‘4·19세대’로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경남 하동의 부유한 가정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경남고에 입학하면서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세차례나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으며 68년 교수가 된 뒤에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대표 사월혁명연구소장 등 사회활동과 민교협공동의장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지난해 대선때 부산 경남지역 교수 2백여명과 김대중(金大中)후보의 토론회를 주선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문정수(文正秀)부산시장 박찬종(朴燦鍾)국민신당고문 김광일(金光一)전청와대비서실장과 중고교 동기로 절친한 사이.

행정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 약점이지만 그는 “30여년 동안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형성된 전문가 제자그룹들을 중심으로 각종 정책자문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소속 김기재후보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후보는 성공한 공직자의 전형으로 불린다. 경남 하동에서 면의원을 지낸 김용운(金龍雲)씨의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후보는 중학교 때부터 진주로 유학, 힘든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식때 당시 하동군수의 격려사를 듣고 “나도 군수가 돼야겠다”고 결심, 대학재학중이던 72년 행정고시 11회에 합격해 부산시 새마을계장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지방재정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 등 요직을 거치면서 내무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며 부산시장을 거쳐 공직생활 23년만인 49세때 총무처장관으로 발탁됐다. 이는 당시 관료사회에서 ‘YS식 세대교체론’의 상징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내무부 차관보 시절에는 78개 시군을 37개로 통합하는 등 1, 2차 행정구역 개편작업을 차질없이 마무리해 당시 최형우(崔炯佑)내무장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기장군민의 숙원이었던 기장군의 부산시 편입을 실현시켰다.

94년 부산시장 재직 때는 9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일같이 새벽부터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민들을 만나 ‘새벽시장’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평이다. 그러나 퇴임 1주일 전 황령산온천지구 지정을 결재해 특혜의혹 시비를 낳기도 했다.

이와 함께 처신이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 불참한 것도 그러한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이같은 부담을 고려한 듯 “시장에 당선되면 3개월 이내 시민의 여론을 물어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여권의 배후지원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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