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리뷰]MBC 「도전 구두쇠왕」,억지웃음 남발

  • 입력 1998년 4월 28일 07시 09분


우리 사회의 지형을 바꿔놓은 국제통화기금(IMF)시대가 TV 프로그램에 몰고 온 변화도 상당하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가요순위 프로그램이 폐지되는가 하면 번쩍거리는 요란한 프로들도 TV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 때를 아십니까’식의 복고풍 소재, 가족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신 가족주의 프로, 실업자들을 소재로 한 유쾌하지 않은 코미디까지 여러 종류의 ‘IMF형’프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설 프로인 ‘도전 구두쇠왕’도 IMF시대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자린고비 정신’과 오락이 이 프로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존 오락프로와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부재가 곳곳에서 노출된다.

첫 코너인 ‘현장 구두쇠왕’은 절약에 관한 문제를 내고 재치있는 답을 낸 사람을 가리는 순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유도하기보다 웃음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가 더 강하다. 질문도 ‘물 한 바가지로 효과적으로 목욕할 수 있는 방법은?’같은 유형이다.

‘구두쇠 열전’은 누가 더 구두쇠인지를 소개하고 우승자를 가리는 시청자 참여코너.

직접 재연에 나선 출연자들의 서투른 연기는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실제 출연자들의 생활에 밴 절약 방법이라고 보기에는 역시 웃음 유발을 의도한 과장된 대목들이 많다.

오락프로이므로 약간의 과장과 희화화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웃고마는 프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을 만큼 출연자들의 생활속의 재치와 세상사는 지혜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아쉽다.

이 프로에서 짧게 언급됐지만 오히려 주목을 끄는 부분은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었던 출연자들의 사연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뿔뿔이 흩어져 살다 열한 번 이사끝에 내 집 장만을 했다는 가족, 기구한 운명에 혼자 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10억원을 모아 장학금으로 기부한 할머니…. 출연자들의 갖가지 사정은 절약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요조건인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편린을 보여준다.

이 프로가 웃음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일까. 제작진이 타이틀 곡을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로 선택한 것도 그런 생각에서가 아니었을까.

〈김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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