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선희/시어머니의 사랑 담긴 보약

  • 입력 1998년 3월 30일 08시 40분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딸 고운이가 우산 쓰고 학교 가는 모습을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그저 사랑스럽고 대견한 생각만 든다.

딸 아이의 노란 우산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실내로 들어와 냉장고 안에 있는 한약을 꺼내 가스레인지에 데운다.

비가 내려서인지 오늘은 시어머님 생각이 더 난다. 내가 천식으로 고생한지 벌써 4년째다. 시댁에 내려가 일하면서 기침을 하면 시어머님은 무척이나 가슴 아파하신다. “너희들 5남매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이 효도하는 길이다.”

몇년 전부터 시어머님은 1년에 두번씩 호박에 한약재를 넣어 달인 약을 보내주셨다. 동서가 하나 있는데 해마다 똑같이 두 며느리에게 주신다. 여기저기 병원 약을 다 써봐도 낫지 않았는데 어머님의 따뜻한 정성 때문인지 요즘에는 기침이 많이 줄었다.

남들은 며느리가 시어머님 보약을 때마다 해드린다는데 우리집은 거꾸로 부모님이 자식에게 약을 달여주니 죄송할 때가 많다.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가끔 반찬을 만들어 시골에 내려가지만 돌아 올 때는 차트렁크에 참기름 과일 마늘 등을 바리바리 싣고 온다.

시어머님은 좀 허약하신 편이다. 그러나 5남매가 잘 살아가는 모습만 생각하면 기운이 절로 나서 전혀 힘든 줄 모르겠다고 하신다. 아무리 자식이 잘해도 부모님 내리사랑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가 보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가 기른 자녀로부터 ‘엄마가 나의 엄마인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다’는 고백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고….

자녀는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성장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나도 과연 딸과 며느리에게 시어머님이 나에게 해주신 만큼 할 수 있을까.

가스레인지의 약이 금세 데워졌다. 약을 챙겨 먹으며 때로는 남편보다 시어머님이 더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자식들 뒷바라지에 신경쓰고 계실 당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선희(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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