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자구노력 미흡한 출판계

  • 입력 1998년 3월 26일 20시 33분


정부가 도매상들의 부도로 위기에 처한 출판계를 구하기 위해 문예진흥기금 2백억원을 비롯해 총 5백억원을 지원키로 한 것은 초읽기에 몰린 지식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조치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면서도 한 연극인은 문예진흥기금이 출판분야에도 지원될 수 있는지 궁금해 법전을 펴봤다고 한다. 출판계가 문예진흥기금 모금에 한 푼도 보탠 게 없는데 2백억원 지원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이랬다. 문화예술진흥법 2조에 ‘문화예술’을 정의하며 출판을 포함했고 20조에는 문예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연극인은 법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동안 라면을 먹으면서도 관람료에 부가된 문예진흥기금을 꼬박꼬박 납부한 입장에서 보면 2백억원 지원은 특혜중의 특혜라고 부러워했다.

▼2백억원의 긴급융자로 출판유통을 현대화 전산화하고 빈사상태의 양서출판에 쓰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한 연극인의 얘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출판계 스스로가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호화제본이나 과대광고 안하기 등 자구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미봉책일 뿐이다.

▼이번과 같은 위기가 다시 와도 출판계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재단법인인 한국출판금고의 재정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출판기금 1백40억원의 조성 내용을 보면 공익자금 지원분이 90억원으로 대부분이고 나머지도 출판인들이 모은 것은 거의 없다. 출판시장이 최소 2조원 규모임을 감안하면 책값의 1천분의 1만 모금해도 연간 20억원이 된다. 앞으로 구성될 출판위기대책위원회는 출판계의 자구책 마련에도 신경써줄 것을 기대한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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