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나이트(664)

  • 입력 1998년 3월 12일 08시 19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32〉

며칠 뒤 저는 서둘러 그 왕국을 떠났습니다.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되면 저 때문에 왕자는 돌이킬 수 없이 깊은 마음의 병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자님! 이제 저 같은 것은 잊어버리시고 훌륭한 배필을 만나 왕실의 대를 이으십시오. 세상에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떠나오는 날 저는 왕자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이미 병색이 완연한 왕자는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소. 그러나 내 마음을 사로잡는 여자는 단 한 사람뿐이오. 그대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내 영혼도 함께 떠날 것 같소.”

이것이 왕자가 제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저는 왕자가 저를 위하여 내준 호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바그다드까지 돌아왔습니다. 바그다드로 돌아오긴 했지만 오빠는 저를 찾아 카이로로 떠난 뒤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바그다드였지만 오빠가 없는 바그다드는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빠가 입었던 옷이며, 오빠가 쓰던 물건들을 매만지며 저는 하루하루 오빠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다시 오빠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를 찾아 카이로까지 갔다가 헛걸음을 한 오빠는 다시 바그다드를 향해 말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오빠 또한 심한 모래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동안 길을 잃고 헤매던 오빠는 마침내 어느 낯선 도시에 당도하였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오빠는 그 도시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길거리는 텅 비어 있고, 집집마다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따금 길모퉁이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인 잃고 헤매는 개들뿐이었습니다. 그 을씨년스러운 도시를 둘러보면서 오빠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도시에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니, 정말 이상하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이렇게 중얼거리며 오빠는 도시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때였습니다.검은 옷에 검은천으로 얼굴을가린키가 큰 남자 한 사람이 두 마리의 당나귀를 몰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를 보자 오빠는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갔던 오빠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옷에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몰고 오는 두 마리의 당나귀 등에는 사람의 시체가 실려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여보시오! 그건 사람의 시체가 아니오?”

너무나 놀란 오빠는 예의 그 검은 옷의 사나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상대 또한 오빠를 보고 흠칫 놀라며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이 고장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한시 바삐 이 도시를 떠나도록 하시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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