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물 아껴쓰기」 몸에 밴 외국인

  • 입력 1998년 3월 11일 07시 31분


며칠전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목욕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었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면도하거나 다른 곳에서 엉뚱한 일을 하는 사람, 샤워기의 물로 등마사지를 하는 사람, 냉탕에서 수영하는 사람, 옆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대화하는 사람 등….

그같은 모습은 우리나라 어느 목욕탕을 가 보아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닐까. 아마 여자 목욕탕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네 목욕하는 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눈에 거슬렸던 것은 그 목욕탕에서 외국인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행태와 너무 비교됐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목욕탕이었기에 그 외국인의 행동거지는 이목을 집중하기에 충분했다. 아들 녀석은 물론 나를 비롯한 어른들도 힐끔힐끔 그를 쳐다 봤다.

그런데 그 외국인은 목욕하면서 샤워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필요한 물은 준비된 대야에 담아 썼다. 아들 녀석은 그러한 모습이 답답하고 군색하게 보였던 모양인지 샤워기를 사용하라고 손짓으로 권했지만 그는 웃으며 사양했다.

그가 앉은 자리의 정면에는 ‘물이 달러’라는 목욕탕 주인이 써 붙인 문구와 함께 공공기관에서 국민계도용으로 활용하는 ‘물을 아껴씁시다’는 스티커가 선명하게 붙어 있었다.

다른 수도꼭지가 있는 자리에도 어김없이 그같은 문구와 스티커가 나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내내 본체 만체였다.

작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외국인의 물 아껴쓰는 모습에서 애국하는 방법을 배운다. 목욕탕 주인이 써 붙인 대로 목욕탕의 따뜻한 물은 달러를 주고 수입해 온 기름으로 데운 것이다.

굳이 IMF 한파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물을 너무 펑펑 쓰는 것은 아닐까.

목욕탕 문을 나서면서 아들녀석이 묻는다. 그 외국인은 왜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글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을 돈으로 생각하지 않고 물로 보기 때문인가.

안승수(대전 유성구 전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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