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랭킹 1∼3위 기전인 기세이(棋聖) 메이진(名人) 혼인보(本因坊) 등 대삼관(大三冠)의 위업을 2년 연속 달성한 조치훈(趙治勳)9단이 올해도 무난히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쾌청’이다.
조9단은 지난달 개막된 기성전 도전 7번기 1, 2국에서 도전자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을 맞아 파죽의 2연승을 거뒀고 각종 군소 기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쾌조의 출발이다.
기세이전은 우승상금 3천2백만엔(약 4억원)의 일본 최대 기전. 도전자 요다9단은 일본 바둑계의 신세대 대표주자. 올해 32세로 96년 1회 삼성화재배 우승, 96∼97년 일본랭킹 7위 고세이(碁聖)를 2연패한 일본의 ‘기대주’. 특히 한국 기사에게 강하고 ‘이창호 킬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일본 바둑계를 대표하는 신세대와 구세대의 대결장이 된 이번 기세이전은 조9단의 ‘롱 런’ 여부가 걸린 고비이자 일본 바둑의 세대교체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국은 1백89수만에 흑을 쥔 조9단의 불계승. 조9단은 신수(新手)를 사용, 요다9단의 패기를 눌렀다. 출발부터 큰 수를 거는 승부사의 배짱을 보여줬다.
2국은 조9단이 실리를 차지하면서 중반 상대의 큰 모양에 들어가 ‘타개’로 승리를 낚았다. ‘타개’는 상대의 모양에 들어가 교란하고 빠져 나오는 기술로 조9단의 주특기.
이번 기세이전은 요다9단에게는 처음으로 맞는 ‘이틀거리 바둑’의 7번기 무대. 이틀에 걸쳐 바둑을 두는 ‘이틀거리 바둑’의 최강자는 단연 조9단.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조9단은 연초 ‘새로운 시련’을 가볍게 뛰어 넘고 있다.
조9단은 군소기전에서도 아낌없는 기량를 보여 일본 서열4위인 주단(十段)전에서도 6년만에 승자조 결승에 진출, 히코사카 나오토(彦坂直人)9단과 도전권을 다투게 됐다. 주단 타이틀까지 획득한다면 일본의 7대기전 중 1∼4위 타이틀을 모두 차지하게 되는 셈.
또 JT배전에서 왕리청(王立誠)9단을 누르고 결승에 진출,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노리고 있고 NEC컵 속기전에서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9단을 불계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 14일 결승진출을 놓고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9단과 일전을 벌일 예정.
3대 기전 중 메이진과 혼인보 예선전은 현재 진행중인 상태.
조9단은 실리파이면서 형세판단에 밝고 타개능력이 뛰어난 기사. 수읽기와 행마의 능률적 구사는 가히 천부적이다. 국내외 기사들은 일본에서 조9단의 1인자 시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관건은 체력이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서봉수(徐奉洙)9단은 “1∼2년은 확실히 군림할 것”이라고 말했고 고바야시 9단은 “이미 40대 중반이어서 5년이상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조치훈 시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의 투혼을 지켜보자.
〈양영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