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지도층의 체면과 거품

  • 입력 1998년 2월 1일 20시 12분


80년대 후반 이후 ‘거품경제’만큼 자주 사용되는 경제용어도 드물 것이다. 국내에서는 거품경제라는 말의 역사가 10여년에 불과하지만 기업활동이나 소비생활 전반에 걸쳐 지금은 합리주의가 체질화한 서구에서는 이미 1720년 영국의 ‘남해 물거품 사건’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거품경제의 효시가 된 이 사건은 거품경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곧잘 역사교과서에 인용된다. 사건은 런던의 남해회사가 정부로부터 미대륙 항해권을 따낸 후 회사선박 운항과 동시에 떼돈을 벌 수 있다면서 1할만 현금을 내면 주식을 내주는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시작됐다. 덧붙여 바닷물을 담수로 쉽게 만든다든지 무한동력차륜개발 등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1백29파운드짜리 주식이 반년만에 1천50파운드로 치솟았다. 그러나 실제 경제활동이 없었던 이 회사 주식은 그후 불과 석달만에 1백50파운드로 급락했고 경영진은 야반도주를 해야 했다. ▼당시 유럽사회를 휩쓸던 식민지에서의 일확천금 열풍에 들떠 투자했던 많은 사람들은 어이없게 속아넘어간 것을 탄식했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업 소비자 할 것없이 거품경제에 들떠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다 IMF한파를 겪고서야 외국빚의 무서움을 실감하며 주제를 너무나 모르고 살았음을 탄식하는 게 지금 우리의 분위기다. ▼중진 경제학자 이대근교수가 자신의 씀씀이를 공개하며 사회지도층으로서 반성해야 할 점을 밝힌 것은 우리 생활에서 왜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지를 잘 지적해준다. 연봉 6천만원 중 경조사비만 6백만원이고 접대비 등 이른바 ‘품위유지비’도 8백만원이나 들었다는 이교수의 자성에 공감이 간다. 우리의 체면문화에 스며든 거품부터 빨리 빼야겠다. 〈임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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