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4)

  • 입력 1998년 1월 16일 08시 0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2〉 이튿날 밤 나는 세번째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천장이 높은 넓은 홀로, 흰 대리석과 갖가지 색깔의 돌, 그밖의 온갖 값비싼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백단이나 침향나무로 만든 새장에는 앵무새 산비둘기 카나리아 잉꼬 등 갖가지 아름다운 새들이 저마다의 가락으로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그 귀여운 새들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까 내 가슴에는 기쁨이 넘치고, 시름 따위는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밤이 깊어졌을 때서야 나는 그 방에서 나와 침실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밤에는 네번째 방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그곳은 조그마하고 아담한 마흔 개의 방이 딸린 넓은 홀이었습니다. 작은 방들은 모두 문이 열려 있었으므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방들은 말로는 도저히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진주 사파이어 산호 다이아몬드 그밖에 갖가지 보석들로 가득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그만 질려서 소리쳤습니다. “오! 세상의 어떤 왕도 이렇게 많은 보석을 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눈부신 보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나는 마음이 들떠 슬픔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제 당대에 제일가는 군주가 될 것이다. 자비로우신 알라께서 나에게 행운을 내려 이 무진장한 재물을 내것으로 만들어주셨다. 게다가 나는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십 명의 처녀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나 이외에 어떤 남자도 그녀들을 건드리는 사람은 없다.” 나는 기쁨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돌아와 잤습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나는 차례차례 방들을 열어보았고, 그때마다 나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매일 밤 방 하나씩을 열어보는 동안 어느덧 삼십구일이 흘러갔고, 이제 열어서는 안된다고 했던 마흔번째 방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마흔 명의 공주들이 몰려올 것이고 나는 그녀들과 더불어 다시 쾌락을 만끽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십일째가 되는 날 나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 금단의 마흔번째 방이 궁금하여 미칠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금단의 방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마흔번째 방 생각 뿐이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사탄이라는 놈이 내 귀에다 대고 내가 스스로를 파멸시키도록 자꾸만 유혹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하룻밤만 넘기면 그 사랑스러운 공주들이 돌아올 것이고, 그녀들과 함께 할 재회의 기쁨을 상상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마흔번째 방에 대한 내 궁금증을 잠재우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일이면 공주들이 돌아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마흔번째 방은 영원히 풀 수 없는 궁금증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나는 더욱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그 금단의 방 앞으로 갔습니다. 황금을 입힌 마흔번째 방 방문 앞에서 나는 처음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흡사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방문을 열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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