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02)

  • 입력 1998년 1월 3일 20시 2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70〉 바다 사이로 길게 모습을 드러낸 길을 보면서 나는 이제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나는 거의 물을 밟지 않고도 본토에까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실로 두 달여만에 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그 작은 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도한 땅은 낙타의 다리도 오금까지 푹푹 빠질 만큼 바닥이 무른 모래산이었습니다.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바람에 나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모래 바닥 위에 납작 엎드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모래 바닥에 엎드려 벌레처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동안 어느덧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심한 모랫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모랫바람 속에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기어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고 있으려니까 저 멀리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불빛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저기에 나를 구해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허겁지겁 그 등불을 향해 기어갔습니다. 내가 그 등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는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그런데 번쩍번쩍 광을 낸 구리 대문이 달린 궁전이었습니다. 새벽 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그 구리 대문이 멀리서 보면 흡사 등불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 궁전에 이른 나는 지칠대로 지친 몸을 가눌 길 없어 문에 기대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 한 사람의 뒤를 따라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은 젊은이 열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그 열 명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왼쪽 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왼쪽 눈을 칼로 도려낸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일동의 아름다운 옷차림과 하나같이 애꾸눈이인 것에 놀라 무어라 미처 말도 하지 못하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젊은이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우르르 나에게로 몰려왔습니다. 나에게로 몰려온 젊은이들은 저마다 나에게 인사한 다음, 나의 사정이며 신세이야기를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껏 내가 겪은 갖가지 일들을 자세히 들려주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일동은 몹시 놀라워하며 나를 궁전 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궁전 안에는 넓은 홀이 하나 있고, 홀 주위에는 푸른 요와 푸른 이불이 펼쳐져 있는 열 개의 침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역시 푸른 색 침구를 갖춘 보다 작은 침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홀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이들은 각자의 침상으로 가 앉았습니다. 그들을 인솔하는 노인은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침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구리 대문의 궁전, 그 궁전에 사는 열 명의 젊은이와 한 사람의 노인, 그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옷을 입었는데 하나같이 왼쪽 눈이 없는 애꾸눈이라는 사실, 그들의 푸른 침상,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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