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53〉
마신과 공주는 불이 되어 한동안 격렬한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홀 안에는 자욱이 연기가 찼습니다. 우리는 그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불에 타 죽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금방이라도 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왕이 소리쳤습니다.
『영광되고 위대하신 신 알라 이외에 주권 없고 권력 없도다! 내가 공주한테 공연한 일을 시켰어! 이 원숭이놈의 마술을 풀어 달라고 했던 건 잘못이었어. 이 원숭이놈의 마술을 푸느라고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딸이 이 세상에 어떤 마신도 당할 수 없는 저 저주스런 마신과 싸우게 되었구나! 아! 이 원숭이놈을 만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알라께서도 원숭이가 온 날을 축복하지 않았어. 그런데도 내가 이 원숭이놈을 동정하고 마술에서 풀어 주려고 했으니! 오, 이 일을 어쩌면 좋지?』
그러나 나는 그러한 왕을 위로하고, 사죄하기 위하여 입을 열어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마신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우리에게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불을 뿜었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마신을 쫓아와 그 얼굴에다 거센 불을 내뿜었습니다. 공주와 마신이 허공에서 그렇게 싸우고 있으니 우리들 머리 위로는 그들이 내뿜는 불꽃이 비처럼 쏟아져내렸습니다.
공주가 내뿜는 불꽃은 전혀 해롭지가 않았습니다만 마신이 내뿜는 그것은 대단히 위험했으니, 그 불똥 중 하나가 내 한쪽 눈에 맞아 나는 그만 애꾸눈이 원숭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곁에 섰던 왕 또한 마신이 내뿜는 불똥을 얼굴에 맞아 얼굴 절반이 타고, 수염이 다 타버렸으며, 아랫니가 몽땅 빠져버렸습니다. 또 마신의 불똥 중 하나는 내시의 가슴에 떨어졌는데, 그것을 맞은 내시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이 끝장이로구나 생각하고 저마다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라는 최고지상하시도다! 알라는 지고지상하시도다! 알라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과 승리가 있으리로다! 모하메드의 가르침과 신앙의 달을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 절망과 치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마신을 태워 죽인 공주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고보니 마신은 한덩어리의 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신과 공주 사이의 그 길고 치열한 싸움은 그제서야 끝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원숭이의 탈을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투의 폐해도 적지 않았으니 나는 그 사이에 애꾸눈이가 되어 있었고 왕은 한쪽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심각한 피해를 본 것은 공주 자신이었습니다. 공주는 심한 부상을 입은 듯 몸도 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왕 앞으로 걸어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저주스런 마신의 화살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석류가 터질 때 마신의 목숨이 들어 있는 씨앗을 쪼기만 했더라면 그 놈을 당장에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글:하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