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지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은 하루하루를 금융과의 전쟁으로 피를 말린다. 재정경제원은 지난 2일 9개에 이어 10일 다시 5개 종금사에 업무정지 명령을 내리고 24조원의 채권을 발행해 예금자보호와 금융부실채권 매입에 쓰기로 했다. 자금흐름을 정상화하고 예금주 동요를 막기 위한 이번 금융시장안정대책은 초강도 처방이다.
이마저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또 무슨 대책을 동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금융기관까지 부도에 몰리는 판에 기업도산은 뒷전이다. 여기에 달러환율이 1천6백원으로 치솟고 금리는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등 금융시장은 파국 직전이다. 그러나 이를 치유할 묘방이 없으니 안타깝다. 이럴 때일수록 금융기관과 기업 예금주는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적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종금업계의 자금난도 문제지만 금융기관간의 불신, 특히 정부에 대한 불신이 최근 자금경색의 핵심요인이다. 종금사 업무정지 같은 예상치 못한 조치가 정책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절박한 상황에서 어느 은행이 정부말만 믿고 수천억원의 콜자금을 종금사에 빌려줄 것인가. 그렇다고 정부가 은행에 보증서를 써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정부는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비상협력체제를 구축, 자금시장 애로를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정책에 대한 신뢰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급하다.
금융마비상태가 오래 가면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 고객 모두가 공멸(共滅)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은행의 예금인출을 부추긴다든지 자금여유가 있는 은행이 위험부담이 예상되는 종금사나 기업에 대출하지 않으려고 예금을 사절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파산한 증권사 직원이 예탁금을 내주면 제삼자인수가 어렵게 된다며 고객의 지급요구를 거절하는 소동도 한심하다.
예금주들의 자제도 절실하다. 망할지 모르는 은행에 맡긴 돈을 찾으려는 심정은 이해되나 향후 3년간 원리금을 보장한다는 정부 약속은 믿어야 한다. 이같은 정부보증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정부가 예금자보호기금을 10조원으로 늘린 것도 획기적이다. 그런데도 수억원씩을 현찰로 인출하는 고객이 늘어난다면 망하지 않아도 될 은행까지 도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급정지된 예금을 선지급 후정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경색의 장기화를 우려한 대기업들의 자금 싹쓸이도 큰 문제다. 유동성확보에만 눈이 어두워 금리 기간 금액을 불문하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재벌기업들의 행태는 극도의 이기주의다. 이런 행위가 금융불안을 더욱 악화시키고 금리상승을 부채질해 결국 기업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오늘의 금융위기는 정부 힘만으로는 헤쳐나가기 힘들다. 모든 경제주체가 힘을 합쳐 총력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