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구두만 닦아온 65세의 노인입니다. 요즘 자금을 구하지 못해 기업이 부도난다고 하는데 그동안 모아둔 돈을 기업에 주어 돕고 싶습니다. 어디가 제일 어렵나요』 6일 본보 편집국에 걸려온 한 전화.
『주식투자라곤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경제가 뭔지 전혀 모른다』는 이 노인은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말미에 던진 말은 『그런데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된 거죠』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협상으로 나라가 들끓던 지난주 본보에 빗발치듯 걸려온 전화는 국민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떤 시민은 『전두환(全斗煥)정권이 반민주적 호헌(護憲)을 획책했던 85∼86년 이후 국민이 이처럼 분노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몇 마디 던진 뒤 흐느끼는 시민까지 있었다.
『요즘 나라 꼴을 보면 답답해 눈물이 절로 납니다. 지금까지 달러 한번 써본 적이 없고 남편 월급 아껴쓴다고 꼬박꼬박 가계부 쓴 죄밖에 없는데…』(30대 가정주부)
『이 나라를 망친 게 누군데 왜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안지고 서민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강요하는 겁니까』(30대 회사원)
『외국인이 우리 기업을 인수하면 기업이 갖고 있는 부동산도 전부 외국인에게 넘어갈 것 아닙니까. 우리 후손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40대 자영업자)
전화를 걸어온 시민들의 분노는 「책임론」에 귀착됐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질 사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시장이 조금만 불안해도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합디다. 지금 우리 시민들은 평생 모은 돈이 날아가지 않을까 밤잠을 못 잡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아무 말도 없는 겁니까』
하루빨리 새출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박현진<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