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대통령은 왜 아무말도 없나요?

  • 입력 1997년 12월 7일 20시 47분


『평생을 구두만 닦아온 65세의 노인입니다. 요즘 자금을 구하지 못해 기업이 부도난다고 하는데 그동안 모아둔 돈을 기업에 주어 돕고 싶습니다. 어디가 제일 어렵나요』 6일 본보 편집국에 걸려온 한 전화. 『주식투자라곤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경제가 뭔지 전혀 모른다』는 이 노인은 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말미에 던진 말은 『그런데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된 거죠』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협상으로 나라가 들끓던 지난주 본보에 빗발치듯 걸려온 전화는 국민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떤 시민은 『전두환(全斗煥)정권이 반민주적 호헌(護憲)을 획책했던 85∼86년 이후 국민이 이처럼 분노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몇 마디 던진 뒤 흐느끼는 시민까지 있었다. 『요즘 나라 꼴을 보면 답답해 눈물이 절로 납니다. 지금까지 달러 한번 써본 적이 없고 남편 월급 아껴쓴다고 꼬박꼬박 가계부 쓴 죄밖에 없는데…』(30대 가정주부) 『이 나라를 망친 게 누군데 왜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안지고 서민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강요하는 겁니까』(30대 회사원) 『외국인이 우리 기업을 인수하면 기업이 갖고 있는 부동산도 전부 외국인에게 넘어갈 것 아닙니까. 우리 후손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40대 자영업자) 전화를 걸어온 시민들의 분노는 「책임론」에 귀착됐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질 사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 같다. 『미국 등 선진국은 금융시장이 조금만 불안해도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발표한다고 합디다. 지금 우리 시민들은 평생 모은 돈이 날아가지 않을까 밤잠을 못 잡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아무 말도 없는 겁니까』 하루빨리 새출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박현진<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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