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75)

  • 입력 1997년 12월 6일 08시 21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3〉 내가 잊지못할 하룻밤을 보냈던 그 지하실에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행복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정조를 바쳤던 그 처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손과 발이 십자가에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양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한 채 비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마신은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화냥년아, 바로 이 작자가 네년과 붙어먹은 놈이지?』 그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도 여자는 완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에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자 마신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소리쳤습니다. 『뭐라고? 그만큼 모진 꼴을 당해도 여전히 바른대로 불지 못해?』 그러자 여자는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후로 나는 이분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알라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당치도 않은 말이에요』 『그렇다면 왜 이자의 신발과 도끼가 여기에 와 있었을까?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겠단 말이냐?』 『그렇지만 그게 왜 여기에 와 있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쩌면 당신이 들어오면서 묻혀 들여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굽힐 줄 모르는 여자의 주장에 마신은 잠시 할 말을 잊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그는 말했습니다. 『좋다. 정히 네년이 이자를 모른다면 이 칼로 이자의 목을 베어봐라. 목을 베면 네 말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겠다』 이렇게 말하며 마신은 여자에게 칼 한 자루를 건네주었습니다. 여자는 칼을 받아들고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왔을 때 나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나를 향하여 여자는 눈짓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야속한 분! 당신은 왜 나에게 이런 화를 끼쳤나요?』 그러한 그녀에게 나 또한 눈짓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 미안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정말이지 그때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꼭 한마디, 이런 말을 그녀에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그 고통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을 테니 어서 제 목을 쳐주세요』 내가 비록 입 밖에 내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내 심중의 말을 읽었는지 갑자기 칼을 내던지며 마신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어요! 아무런 원한도 없는 처음 보는 사람의 목을 어떻게 베겠어요?』 그러자 마신은 말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샛서방을 죽이는 게 슬픈 모양이로구나. 하룻밤 나눈 정 때문에 그토록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백을 하지 않는 거로구나. 오냐, 잘 알았다』 이렇게 말한 마신은 이제 나를 향하여 물었습니다. 『너도 이 여자를 모를 테지?』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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