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 골칫거리인 폭주족의 역사는 비교적 길다.
폭주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 싹트기 시작, 월남전이 한창이던 70년대에 이르러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등 서부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당시 이들은 반전(反戰)과 인권을 외치는 히피의 일종. 일정한 주거지도 없이 오토바이로 수십명씩 몰려다니며 기이한 행동을 했다.
이들이 타고 다닌 오토바이가 바로 「할리 데이비슨」.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앞바퀴가 툭 튀어나오고 좌석이 낮은 대형 오토바이다.
이들은 도심보다 변두리지역에서 활동, 교통방해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세력간 폭력 다툼과 약물복용 등으로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폭주족은 처음부터 비난의 대상은 아니었다. 「현대의 카우보이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자신들끼리 개성있게 살아가는 정도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폭주족문화가 일본에 수입된 것은 70년대 초. 「이유없는 반항」의 대표적 표출로 비춰진 폭주족문화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극성을 부려 일본 전국에 수천개의 크고 작은 조직이 생겨나 20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자랑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스피드를 즐기고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에서 출발한 폭주족문화는 곧 범죄와 연결됐다. 수백명 단위로 조직을 만든 폭주족이 조직폭력단으로 변모했던 것.
폭주족은 매년 1월1일 후지산 부근에서 이른바 「태양의 질주」 행사를 갖고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새해 첫날을 맞는 이 행사에는 평균 3만∼4만명이 참가, 경찰도 아예 단속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폭주족 문제를 더이상 단순한 교통문제로 보지 않는다.
93년 「할리 데이비슨」 생산 90주년을 맞아 미 전역에서 모여든 폭주족 1백만명이 위스콘신주 밀워키시에서 행사를 가졌다. 집단화해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큰 폭주족집단인 「헬스 에인절스」는 근거지인 로스앤젤레스를 넘어 전세계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범죄집단으로 변모했다. 뉴저지의 「구스」 등 다른 폭주족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선 「헬스 에인절스」조직이 모임을 갖던 중 반대파인 「반디도스」들이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 17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1월 반대파 폭주족을 가스버너로 태워 죽이는 잔악한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폭주족이 범죄를 저질러도 계획적이거나 조직적이기보다는 우발적인 편이다. 그러나 외국의 예에서 나타나듯 기동력을 갖춘 폭주족이 범죄집단화 할 가능성은 항상 남아 있다.
〈전 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