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꼭 白旗 들어야 했나?

  • 입력 1997년 12월 4일 19시 54분


국제통화기금(IMF)의 일방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협상결과는 굴욕적이다. 한국의 앞날은 이제 IMF에서 고삐를 잡고 이끄는대로 끌려가게 되었다. 협상의 배후에는 미국과 일본이 있었고 한국정부의 조건없는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그들은 면밀한 각본과 작전에 따라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구제금융을 얻어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경제주권과 함께 정치 사회 문화 생활주권까지 침범받게 되었다. 물론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IMF의 조건이 까다로울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거시경제, 재정 통화정책, 금융구조조정, 기업지배구조 개선, 무역 자본시장 개방 등에 협상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우리경제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협상결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금융 자본 산업 무역 등 시장을 모조리 내놓으라는 식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 경제가 과연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금융과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IMF의 진단과 처방 그 자체를 문제삼자는 것이 아니다. IMF가 요구하는 개혁안들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실현했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확대, 단기채권 국공채 기업어음시장 조기개방, 은행과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허용, 수입선다변화제 폐지, 자동차 자가인증제 도입 등은 무리한 요구들이었다. 미국과 일본은 다자간 또는 쌍무협상을 통해 타결해야 할 이같은 쟁점들을 IMF를 앞세워 단숨에 관철시켰다. 일본은 한술 더 떠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과 독도문제를 연계시키자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웃나라의 위기를 자국의 이익챙기기에 이용한 것으로 국제 도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IMF와의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미 일 등 경제대국의 패권주의적 횡포도 문제지만 정부의 협상자세와 전략은 너무 한심했다. 금융 외환위기와 직접관련이 없는 부문까지 일방적으로 양보해 국내 자본시장을 국제 핫머니의 투기장이 되게 하고 우리 기업들을 외국자본의 약탈식 기업사냥의 표적으로 만든 것은 잘못이다. 당당한 논리로 협상에 나서 지킬 것은 지켰어야 했다. 이는 협상결과가 몰고올 파장에 대한 대비보다 우선하는 일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