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70)

  • 입력 1997년 12월 1일 08시 11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38〉 여자는 나의 손을 잡고 홍예문을 지나 목욕탕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후로 나는 그렇게 넓고 아름다운 목욕탕은 처음 보았으므로 모든 것이 흡사 꿈만 같이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자, 옷을 벗으세요』 내가 목욕탕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까 여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이 먼저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탐스런 젖가슴, 잘록한 허리, 날씬한 몸매, 깨끗하고 고운 피부, 정말이지 그녀의 몸은 미의 극치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도 서둘러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목욕탕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자 여자는 더없이 정성스런 손길로 내 몸을 씻어주었습니다. 내가 목욕을 마치고 탕 밖으로 나갔을 때는 내 몸 구석구석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 다음 높은 장의자에 나를 앉혔습니다. 그리고 사향이 섞인 샤베트 수를 갖다주었습니다. 내가 샤베트 수를 마시고 있는 동안 여자는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주 앉아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여자가 말했습니다. 『고단하실 텐데 누워 쉬세요』 아닌게 아니라, 모처럼 목욕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니 온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가 깔아놓은 요 위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있었던 불행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곤히 잠들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눈을 떠보니 여자는 내 발치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발을 주물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내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는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으로 방긋 웃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축복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저랍니다. 정말이지 저는 그동안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았어요. 일곱 해 동안 이 땅 속에 혼자 갇혀 살았으니까요. 말동무를 보내주신 신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여자는 향기로운 풀과 꽃으로 식탁을 장식한 뒤 벽장에서 밀봉된 묵은 포도주 한 병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이 오르자 여자는 내 손에 입맞추고, 내 손을 자신의 뺨에 댄 채 이런 시를 읊었습니다. 당신이 오시면, 내 마음 속 눈동자도 펼쳐보일 각오였어요. 당신을 맞아 내 볼은 바닥의 요가 되고, 눈꺼풀도 펼쳐 당신의 발에 밟히오리다. 이렇게 노래하는 여자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애절하게 보였던지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그 귀엽고 순진한 처녀가 칠 년이란 세월을 혼자 지냈으니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계속해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슬픔도 괴로움도 잊은 채 여자를 연모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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