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63)

  • 입력 1997년 11월 24일 07시 3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31〉 백부님의 목소리가 얼마나 가엾게 느껴졌던지 나는 백부님의 품에 안겨 울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울었던 것은 다만 백부님이 측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속세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운명이 너무나 덧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신하의 칼끝에 죽어간 아버지, 우연한 실수가 화근이 되어 끝내는 한쪽 눈을 잃어버린 나,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을 사랑한 끝에 이 어둡고 습한 지하에서 죽어간 사촌, 아들과 딸의 주검 앞에서 명복을 빌지도 못하는 그 가엾은 아버지, 이 모든 인간의 고뇌가 너무나 슬펐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뒤에서야 백부님과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의지한 채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철판을 닫고 흙을 덮은 다음 묘석을 전과 같이 해 놓았습니다. 이제 나의 사촌은, 내 백부님의 아들은 영원히 지하에 잠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부님과 나는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왕궁으로 돌아와보니 또 다른 재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북소리, 나팔소리, 징소리, 군사들의 함성소리, 말발굽소리, 수많은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백부님과 나는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밖에는 자욱한 모래 먼지가 하늘과 땅과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백부님은 신하들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달려와 보고했습니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지금 밖에는 임금님의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간 애꾸눈이 대신이 수많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간 애꾸눈이 대신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백부님은 노여움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습니다. 『동생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해간 그 배은망덕한 놈이 이번에는 나까지 치겠다고? 오냐, 잘 왔다. 내 이놈의 목을 베어 동생의 원수를 갚아주리라』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군사(軍師) 한 사람이 달려와 보고했습니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놈은 자국의 군사 외에도 황야를 누비며 포악한 강도질을 일삼는 아라비아인들까지 보태어 그 병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성을 지키는 아군 병사들이 최선을 다하고는 있습니다만 놈들에게 대항한다는 것은 중과부적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부님은 칼을 뽑아들고 소리쳤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소리를 하면서도 군사라 할 수 있겠는가? 놈들이 아무리 수가 많아도 우리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야 한다』 이렇게 말한 백부님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몸소 전쟁터로 달려나갔습니다. 아군 병사들은 백부님의 지휘를 받으며 열흘 동안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기습 공격을 받았는데다가, 중과부적이라 수도는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전투끝에 백부님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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