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도미니카]김영서/전력난 심각…툭하면 정전

  • 입력 1997년 10월 22일 07시 41분


사무실을 임차하고 나서 며칠 뒤 오후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임시 사무실로 사용한 대사관과 숙소를 떠돌던 서류를 정리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던 중에 『발전기를 꺼야 하니 빨리 나가라』는 경비원의 소리를 소홀히 들은 것 같다. 갑자기 불이 꺼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책상을 정리하고 비상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 경비원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니까 『시키는대로 했을 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건물관리회사에 하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건물관리회사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였다. 발전기 가동은 일과시간인 월∼금요일 오전8시부터 오후7시로 제한하고 있어 일과외 공급시에는 전 입주업체가 동의하거나 수요업체가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경비원은 『안타깝지만 단전통보 후 5분내 전기가 나가니까 유예시간을 잘 지켜달라』면서 『하루 평균 7,8회 정전이 발생하니 사무실이나 집에서 항상 랜턴을 준비하라』고 알려줬다. 도미니카에서 생활한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둠 속에서도 랜턴을 능숙하게 찾을 수 있고 중요한 회의나 만찬 중 정전이 되어도 과거처럼 당황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나라 정전문제는 최근 들어 보다 심각해진 듯하다. 불과 1,2개월 전만 해도 일반가정의 정전과 불만이 신문에 떠들썩하게 났는데 이제는 자체발전 설비를 갖추고 있는 백화점 슈퍼마켓 등의 냉동식품이 변질되고 생산현장의 조업중단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급기야 대통령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긴급 각료회의까지 소집하기도 했다. 요즘도 매일 오후7시면 어김없이 건물경비원이 문을 두드린다. 주말에도 전기가 없다. 혹시나 하고 토요일마다 사무실에 나가보지만 경비원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세워 좌우로 흔든다. 돌아가라는 뜻이다. 세계는 바쁘게 뛰고 있는데…. 전력난이 빨리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서(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산토도밍고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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