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21)

  • 입력 1997년 10월 10일 08시 03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47〉 대신이 반지를 문지르자 홀연 마왕이 나타나더니 대신을 향해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주인님. 저는 이제 당신의 노예랍니다. 분부만 내리십시오.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도시를 부술까요, 도성을 쌓을까요, 아니면 왕의 목을 비틀어 죽일까요? 말씀만 하십시오. 무엇이든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반지의 마왕이 이렇게 말하자 대신은 마루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을 잡아다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사막에다 갖다 버려라. 사막 중에서도 가장 황량한 사막에다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저놈은 굶어서 뒈질 테고 아무도 행방을 모르게 되겠지』 대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왕은 덥석 마루프를 움켜잡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 뜻밖의 일을 당하자 마루프는 번쩍 정신이 들어 소리쳤다. 『아부 알 사다트, 네놈은 지금 무슨 짓을 하느냐? 날 어디로 데리고 갈 셈이냐?』 그러자 마신은 말했다. 『시끄러, 이 얼간이야! 나는 너를 버리러 사막으로 가는 길이다. 그처럼 기막힌 마술반지를 남의 손에 넘기다니, 정말이지 네놈은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알라의 눈이 아니라면 나는 네놈을 천 길 높이에서 떨어뜨려버리고 싶다.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갈갈이 찢어져버리게 말이다』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깨달은 마루프는 더이상 아무말 하지 못했고, 마왕은 그러한 마루프를 몸서리쳐지는 사막 한가운데 내려놓은 채 혼자 날아가버렸다. 한편 마루프로부터 도장반지를 빼앗은 대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왕에게 말했다.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몇 차례나 나는 그놈이 엉터리 야바위꾼이라고 했건만 임금님께서는 한번도 내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지요?』 그러자 왕은 말했다. 『오, 충성스런 대신이여! 과연 그대의 말이 옳았다. 알라께서 그대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그건 그렇고, 나한테도 그 반지를 좀 보여주렴. 눈요기라도 하게 말일세』 그러자 대신은 왕을 사납게 째려보다가 끝내는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 쓸개빠진 놈아! 내가 네놈의 상전이 된 이 마당에 어찌 이것을 네놈한테 주겠느냐? 이걸 네놈한테 주고 평생을 네놈 신하노릇이나 하란 말이냐? 이렇게 된 바에야 네놈의 목숨도 살려둘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한 대신은 다시금 반지를 문질러 마신을 불러냈다. 『이 무엄한 놈을 잡아다가 그 사기꾼 사위 옆에다 던지고 오너라!』 대신이 이렇게 말하자 마신은 왕을 움켜잡더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왕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시오, 마신! 당신도 따지고보면 알라의 피조물이 아니십니까? 나한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입니까?』 왕이 알라를 운운하는 바람에 마신은 약간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오. 나는 다만 주인의 명령에 따를 뿐이오. 누가 마술 반지를 차지하거나 나로서는 그 사람의 명령을 거스를 수가 없다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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