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세종문화상 수상 최명희씨]「혼불」17년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4분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가 제16회 세종문화상 문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혼불」 하나만 고집스레 써온 17년간, 「왜 쓰는가」라는 무수한 질문에 『순결한 모국어를 재생하고 싶다』고 답해온 최씨.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기리는 이 상이 임자를 찾은 셈이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입니다. 「혼불」을 통해 우리말 속에 깃들인 우리 혼의 무늬를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국제화다 영상시대다 들떠서 누천년의 삶이 녹아 우러난 모국어가 단순한 기호로 흩어져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지난해 12월 「혼불」(한길사)을 10권의 책으로 묶어낸 뒤 작가는 지쳐 쓰러졌다. 「혼불」을 쓰느라 17년간 내팽개쳐 두었던 몸이 일시에 반란을 일으켰던 것. 그러나 작가의 칩거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난 「혼불」은 신들린 듯 새로운 일을 잉태해 나갔다.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 책 발매 보름만에 거뜬히 1만질이 팔려나갔다. 7월에는 단재문학상, 8월에는 모교인 전북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혼불」은 다른 예술가들의 상상력도 자극했다. 인간문화재 안숙선씨는 「혼불」 한 토막을 창으로 불러냈다.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싶다』던 동양화가 최영식씨는 혼불에 묘사된 소나무를 읽고 비로소 소나무를 그려냈다. 11월 서울에서 전시회를 갖는 나전칠기장 전용복씨는 「혼불」을 세번 통독한 뒤 가로4m 세로2m짜리 작품 「혼불」을 만들었다. 지난달 19일에는 고건총리부터 탤런트 김미숙씨까지 각계의 열성독자 1백30명이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창립, 「혼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자는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고향(전주)인 전북에서는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혼불」문화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왜 「혼불」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타들어가는 것일까. 소설가 최일남씨는 일찍이 「혼불」을 두고 『미싱으로 박아댄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땀한땀 뜬 이바구』라고 감탄했다. 시인 고은씨는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에 피를 묻혀가면서 새기는 처절한 기호』라고 몸서리를 쳤다. 작가 자신은 다른 이들의 이런 해석을 자신의 어휘로는 「공들이기」라고 풀이한다. 『액막이연 하나를 만들 때도, 작은 골무 하나를 감칠 때도 온 마음을 다해 공을 들이는 혼불의 인물들, 그것은 삶에 대한 기도입니다. 모든 것이 일회용으로 쉽게 만들어지는 현대를 살며 다 잊어버렸지만 우리 어머니 할머니는 그렇게 일상사의 작은 것에도 온 마음을 기울여 사셨어요. 혼불을 쓰면서 그 공들임의 자세를 닮으려 했을 뿐입니다』 「혼불」 속의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사람시늉조차 하기 어렵거나 천민태생이라는 낙인으로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없을 때, 혹은 가문이 풍비박산날 위기에 처해서도 대강대강 살지 않는다. 어려울수록 달의 정기를 들이마시며(吸月精) 더 나은 삶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사람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하나있지요. 괴로우면 죽는 줄 아는 것. 괴로움 속에서도 살 수 있는 힘을 찾아내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혼불」 속에서 그려내고 싶었어요』 민속학자들은 「혼불」을 풍속사의 박물관이라고 평하고 언어학자는 우리말의 보고라고 감탄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어떤 칭찬이나 전문적인 편린보다도 독자들이 「혼불」속에서 「간절한 삶의 자세」를 읽어주기를 바란다. 한 친구의 독후감은 그래서 그에게 특별한 감동으로 남는다. 손에 물도 안 묻히고 산다던 부유한 친구는 「혼불」을 읽은 후 제 손으로 아이의 도시락가방을 만들어 주었노라고 고백했다. 『「혼불」을 읽고나니 나는 내 아이에게 무엇으로 기억될까, 내가 아끼던 비싼 찻잔으로나 추억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이라도 공들인 사랑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생 처음 아이를 위해 바느질을 했다』 최씨는 그 공들이는 마음들이 세상을 밝히는 불빛이 되기를 원한다. 혼돈과 어둠이 짙어도 그 불빛들이 길을 밝힐 것이므로. 〈정은령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