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검객은 사람의 마음을 벤다고 했다.
프로 입단 3년만에 홈런 타점 안타의 타격 3개부문 선두를 질주하며 역대 최연소 MVP를 꿈꾸는 「새끼 사자」 이승엽(21·삼성)이 바로 이런 경우다. 김기태(28·쌍방울) 양준혁(28·삼성) 이종범(27·해태) 박재홍(24·현대)과의 피말리는 타격경쟁에서 약관의 그가 막판까지 추호의 흔들림 없이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
이런 점에서 이승엽은 「돌부처」 「강태공」 「애늙은이」로 불리는 한국 바둑의 기린아 이창호(22)와 너무나 흡사하다. 기술적인 면에서 이창호의 장점은 빠른 수읽기와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끝내기. 그러나 그가 실력보다 강한 이유는 위기때조차 평상심을 유지하기 때문. 바둑이 안될 때 눈 깜박거림이 잦아지는 정도가 밖으로 드러나는 그의 유일한 움직임이다.
양준혁이나 이만수처럼 괴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박재홍이나 장효조처럼 손목힘이 강한 것도 아닌 이승엽의 장점도 바로 마음을 비운 「무심타법」.
이종범이 무리하게 홈런을 노리다 무안타에 그칠 때도, 박재홍이 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밤잠을 설칠 때도 그는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했다고 동료들은 전한다.
기술적으로는 트레이드 마크인 「외다리 타법」을 이용, 오른쪽 어깨를 홈 플레이트쪽으로 최대한 붙여 무게중심을 하체에 싣는 스윙을 한다. 또 방망이 스피드가 워낙 빠르고 몸이 부드럽기 때문에 직구를 노리다가 변화구가 들어와도 끝까지 공을 보고 칠 수 있는 것도 장점.
이들은 당대 최고의 사부를 만났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이창호는 조훈현을, 이승엽은 백인천을 만나는 기연(奇緣)을 얻었다.
이창호가 바둑 두는 것만 빼곤 왼손잡이라는 점과 둘다 학교수업은 낙제를 겨우 면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이런 점에서 일인 장기독주체제를 구축한 이창호가 주위의 지나친 기대와 너무 빠른 정상정복으로 인한 목표 상실감으로 한때 슬럼프에 빠졌던 전철을 이승엽이 내년 시즌에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고 있다.
〈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