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93)

  • 입력 1997년 9월 9일 07시 57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19〉 왕은 대신에게 말했다. 『그 사내를 초청하여 융숭히 대접한 다음 내가 가지고 있는 구슬 하나를 내어 보인단 말야. 그 구슬로 말할 것 같으면 눈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 가치를 알아볼 수가 있지. 만약 그 구슬의 가치를 알아낸다면 그는 전통있는 훌륭한 가문의 사람으로서 대부호가 틀림없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그 진가를 모른다면 사기꾼이거나 비천한 졸부임에 틀림없어. 그럴 경우 나는 그자에게 비할 데 없이 끔찍한 죽음을 내리리라. 그러니 지금 곧 그자를 불러오도록 하라』 왕의 신하들은 왕의 분부에 따라 마루프를 찾아갔다. 『나리가 카이로에서 온 마루프씨입니까? 임금님께서 나리를 뵙자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마루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나한테 빚을 준 상인들이 왕에게 고소를 한게 틀림없어.상인들을 상대로 한 지난 이십 일 동안의 내 사기행각이 밝혀지게 되면 왕은 나를 살려두지 않겠지』 그러나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움큼씩 금화를 나누어주고 싶다는 오래 전부터의 소원을 풀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가지 애석한 것이 있다면 좀더 많은 돈을 빌려 좀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좋습니다. 이젠 임금님께 갑시다. 내가 못다한 일은 알라께 맡기기로 하고 말입니다』 왕궁으로 찾아간 마루프는 어전에 인사를 드렸다. 왕은 이마에 손을 대고 마주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대가 카이로에서 온 상인 마루프인가?』 『예, 그렇습니다』 『상인들이 그대에게 육만 디나르의 돈을 빌려주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빚을 갚지 않는가?』 왕의 이 물음에 정말이지 마루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둘러댔다. 『저의 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저는 곱으로 갚을 작정입니다. 금이 필요하다면 금으로, 은이 필요하다면 은으로, 상품이 필요하다면 상품으로 말입니다. 금화 천 닢을 빌려준 사람에게는 이천 닢씩 갚아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두 배로 갚겠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제 체면을세워준데 대한 보답입니다.저한테는 금이든 은이든 피륙이든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마루프가 아무 망설임없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마루프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는 말했다. 『과연 그대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부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군. 상인들에게 빌린 돈 문제는 그대의 짐이 도착하는 즉시 갚으면 될 것 같으니 그쯤 해두기로 하고,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이 물건을 좀 감정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야』 이렇게 말한 왕은 주머니에서 크기가 개암 열매만한 보석 하나를 꺼내어 마루프에게 내밀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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